[이슈분석]자본시장법 시행 카운트다운

자본시장법 시행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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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 금융 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된다.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이날 시행되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 침체로 부진의 늪에 빠진 증권업계에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새 자본시장법은 지난 2009년 자본시장과 투자은행(IB) 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본시장법을 개정한 것이다. 2009년 자본시장법은 종전의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 증권선물거래소법 여섯 개 법을 폐지·통합해 법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했다.

증권업, 선물업, 자산운용업 등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 간 겸영을 허용함으로써 선진국의 IB처럼 기업금융, 자산관리, 증권서비스, 직접투자 등 다양한 금융투자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자본시장법 제정 취지·기대와 달리 IB 중심 수익구조 전환은 물론이고 증권사 간 M&A를 이용한 대형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IB 업무를 활성화해 증권사의 중개 기능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지난 2011년 개정 논의를 시작해 3년이라는 산통 끝에 결실을 거두게 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핵심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증권사를 일반 증권회사와 구별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기업대출, 지급보증, 어음할인 등 기업신용 공여 업무가 가능해진다. 그동안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 IB 업무만을 진행해왔던 증권사가 기업 신용공여에 나설 수 있어 자기자본을 이용한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는 자산 규모에 따라 증권사 간 역할을 재편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요건을 충족하는 증권사는 유상증자로 자본력을 확충한 KDB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다섯 대형사뿐이다.

그동안 이들 대형 증권사는 자본시장법이 3년간 표류하면서 레버리지 확대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잉여 자본만 늘어난 역레버리지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이번 개정안 통과로 이 부분이 해소될 전망이다. 게다가 3조원이라는 자본규제로 대형사와 중소형사 영역 구분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다.

법 시행으로 업계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대형IB에 기대감이 높다. M&A로 증권산업의 판이 커진다면 국내 금융산업은 은행, 금융투자업(증권)이라는 쌍두마차 체제로 변모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대형 증권사는 브로커리지 위주 수익 모델에서 탈피해 근본적 사업구조 개편을 서두를 전망이다. 증권사는 거래대금 정체, 과열경쟁으로 발생한 마진율 하락 등 매출 둔화와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며 지난 2분기 실적에서도 초라한 성적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권사는 이번 개정안 시행을 새로운 먹거리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우리투자증권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미 IB 부문에서는 국내 최고 증권사로 꼽힌다. 우리은행 후광효과로 인수금융 분야에서는 JP모건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M&A자문, IPO와 유상증자, 채권 주관과 인수 순서 등에서도 최고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MBK파트너스가 참여한 네파(Nepa)와 ING생명 인수 딜에 연달아 인수금융을 자체적으로 지원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IB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최근 경영전략부에서 기업신용공여 업무를 준비 중이며 6000억원 규모 투자금융 부문 자금운용한도(북·book)를 확대할 계획이다.

KDB대우증권도 IB부서 내에 신용공여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면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대우증권은 신용공여 TF의 경쟁력을 제고하고자 산업은행과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며 IB본부의 북을 늘리기로 했다. 이 밖에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삼성증권 역시 기업신용공여 범위 설정, 리스크 관리 방안, 심사방안 등을 내부적으로 협의 중이며 대출 시장 진출을 앞두고 IB본부의 북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담보를 잡아 자본을 빌려준다면 증권사는 자기자본투자(PI)나 구조화금융 등으로 기업에 신용을 해주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다양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길이 열리고 증권사에는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IB 핵심 업무인 기업대출과 신용융자 부문에선 당초 기대 대비 보완장치가 강화돼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과도한 대출에 따른 증권사의 부실을 막으려 기업 신용 공여 한도가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률상 신용 공여의 전체 한도 금액이 자기자본의 100%로 제한됐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신용 공여 한도는 300% 수준이었다.

증권사는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기 때문에 기업 대출 자금은 자기자본을 활용한다. 그러나 기업 대출 자금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산정 시 차감되기 때문에 NCR 비율을 맞추려면 대출해줄 수 있는 자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구나 NCR 비율을 맞추는 한도에는 주식담보대출 등 리테일 신용공여도 합산되기 때문에 주식담보대출이 많을수록 기업대출 한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5대 증권사의 자기자본은 총 16조원가량이지만 이런 부분을 다 제외하고 나면 실제 기업 대출에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3조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기업대출 한도 확대나 NCR 규제 완화를 금융당국에 요구하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된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추가 완화나 개선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 측면 역시 전망이 불투명하다. 거시환경 및 시장여건 악화로 M&A 딜이 부진한 상황에서 인수자금 수요가 위축된데다 일반 기업자금 대출도 조달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은행권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기업대출 시장을 은행이 석권하는 상황에서 증권사가 파고들 수 있는 기업 대출 수요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자본력 확충도 필수과제다. 금융투자업의 특성상 자본력 강화는 기업 경쟁력이다.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IB로 커나가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은 자본 확충이다. IB자격을 갖춘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 등 국내 다섯 개 대형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3조5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IB로 꼽히는 골드만삭스는 자기자본이 81조원에 달하며 노무라증권도 35조원에 이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 플레이어를 지향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나서 증권사 간 M&A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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