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35도가 넘는 찜통더위로 에어컨은 쉴 틈이 없다. 정부에서 전력난을 우려해 에어컨 가동을 제한한다. 그러나 밤 최저온도가 25도 이상인 열대야 속에서 에어컨 찬바람이 없으면 잠들기도 힘들다. 지구 온난화가 몸소 느껴지는 요즘, 더위를 이기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에어컨이 오히려 온난화를 앞당긴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화를 면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 화를 불러일으키니 아이러니하다. 프레온가스 이야기다.
#1. 에어컨과 냉장고 등 공기를 시원하게 만드는 장치의 원리는 단순하다.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을 기화라고 하는데, 기화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기체가 액체보다 분자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에는 보통 열이 활용된다. 즉 액체가 열을 받아 기체로 변하는 것이다.
더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려두면 조금이나마 시원해진다. 마당의 물은 수증기로 기화하면서 공기 중 열을 빼앗는다. 기화 원리가 에어컨에 적용돼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에어컨에서 기화되는 물질은 프레온이다. 에어컨에 충전된 프레온가스는 압축기에서 고압으로 압축된다. 기체가 압력을 받으면 액체로 변하는데 이를 액화라고 한다. 압축기는 보통 에어컨이나 냉장고 밖에 설치돼 있다. 액화 과정에서는 기화와 반대로 열을 방출해 뜨겁게 느껴진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이유다.
액체 프레온은 에어컨·냉장고 내부 팽창 밸브에서 압력이 낮아진다. 압력이 낮아진 프레온은 가스(기체)로 기화하면서 주변 온도를 빼앗아 에어컨에서는 찬 공기가 나오고, 냉장고 안은 저온이 된다.
#2. 1820년대 마이클 패러데이는 압축·액화된 암모니아가 기체로 변할 때 주변 온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냉매가 바뀌기는 했지만 오늘날 에어컨 냉각 기술은 이 방법에서 발전된 것이다. 초기 에어컨과 냉장고는 냉매로 암모니아, 염화메틸, 프로판 등 기체가 사용됐다. 1902년 미국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가 인쇄공장에 이용한 세계 최초 상업용 에어컨도 암모니아를 냉매로 사용한 제품이다.
과거 냉매 기체는 인체에 미치는 독성과 쉽게 폭발하는 위험성 때문에 1920년 인체에 안전한 프레온으로 대부분 교체됐다. 냉장고 에어컨 냉매뿐 아니라 발포제, 스프레이, 소화기 분무제 등으로 사용되는 프레온은 메테인, 에테인 등 기본 탄화수소 화합물에서 수소 부분을 불소나 다른 할로겐 원소로 치환한 물질이다.
안정된 물질이라 공기에 나온 뒤에는 분해되지 않고 성층권까지 올라간다. 자외선에 분해돼 염소 원자를 내놓고 오존과 반응해 오존층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다. 온실효과 주범으로도 주목돼 공기를 시원하게 하는 냉매가 지구 전체를 뜨겁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프레온은 2030년까지 전면 생산·수입이 금지되는 만큼, 최근에는 이소뷰테인 등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전기냉장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3. 과거에도 뜨거운 여름을 견디는 선조들의 지혜가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물에 젖은 잔디를 벽에 걸어두는 방식으로 공기를 시원하게 했다. 인공적인 냉매는 아니지만 기화 열 흡수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빙고를 빼놓을 수 없다. 냉매 없이도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낮은 온도를 유지한 전통 냉장고다. 석빙고는 오늘날 전기냉장고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과학원리가 숨어 있다. 출입구 머리 부분에 높은 벽을 만들어 더운 공기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1~2m 간격의 아치형 내부 천장은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오는 대류 현상을 활용해 더운 공기를 밖으로 빼냈다. 석빙고 벽은 흙과 돌 열전도율 차이로 단열효과를 극대화했다.
여름을 이기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현대 기술과, 자연 속에서 여름을 이기는 방법을 찾는 과거 기술을 비교해 보며, 에어컨 온도를 낮춘다고 만사 해결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