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 콘텐츠가 만든다]`콘텐츠=공짜` 인식 깨져야 제대로 가치평가 가능

“신용도, 자금흐름 분석 등 의뢰가 들어와도 기업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이 관심만큼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통해 고객에게 안정적 수익을 돌려주는 은행 같은 금융구조상 위험이 큰 산업에 투자나 대출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선진국가도 비숫하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서도 은행을 통한 직접 투자나 대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투자조합이나 신용평가기업들이 업계 전문가들과 체계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성공 모델을 만들고 있다.

백승혁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일본은 여러 기업이 참여한 제작위원회 방식이 보편적으로 활성화되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해 콘텐츠 가치를 평가해 가치평가 모델이 자연스럽게 축적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예로 들면 원소스멀티유스(OSMU) 전제하에 영화, 음악(OST), 유통 전문기업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전문 분야에 맞게 콘텐츠 가치를 평가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다. 사업 실패에 따른 위험 역시 나눠서 지는 구조여서 손실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는 “특히 콘텐츠산업이 IT 발달과 함께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어 산업 변화와 특성에 맞는 금융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본 사례는 참고할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신용평가회사나 펀드 내에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 콘텐츠를 평가하고 사업 성공을 가늠해 이를 토대로 투자가 이뤄진다.

김홍일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대표는 “콘텐츠 산업은 특정 기관이나 정부가 정해준 가치평가 모델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기획자에 대한 경험과 열정, 콘텐츠 기획(IP)에 대한 정확한 가치평가가 이뤄져야 제대로 투자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영화의 90%이상을 JP모건이 투자하는 것도 전문영역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며 “산업 가치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있어야 투자와 제작의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미국 역시 투자조합 내에서 전문가가 콘텐츠를 가치 평가해 흥행 가능성을 분석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설립을 앞둔 우리나라 투자공제조합 역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려면 업계를 중심으로 가치평가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가치 평가는 적절한 소비자 가격이 형성돼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점도 강조했다.

백 연구원은 “일본이나, 영국, 미국 등에서 콘텐츠 가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음악, 영화, 게임 등에 소비자 시장을 통한 적절한 가격체계와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콘텐츠가 공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가치 평가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