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밴(VAN) 시장 구조 개선방안` 일환으로 공공밴을 설립하자는 계획과 관련해 카드사와 밴사 갈등이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카드업계와 밴업계, 금융당국까지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동상이몽하는 형국이다. 최근 KDI는 공청회를 통해 중소가맹점의 밴수수료 업무를 전담하는 공공밴 설립을 제안했다. 영세가맹점의 밴수수료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다.
영세 가맹점은 공공밴이 저렴한 수수료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밴 적자는 카드사나 국가가 보전해 주자는 것. KDI는 최근 금융위원회에 공공밴 기능을 금융결제원이 맡도록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에 제출한 비공개 보고서에는 `공공밴 역할을 맡아줄 공공밴사로 금융결제원을 지정하거나 신규 밴사를 도입할 수 있음`이라고 적시했다.
반면 카드업계는 내심 한국신용카드결제(코세스)가 공공밴 운영사업자로 지정되길 바라고 있다. 이 회사는 1999년 전업계 카드사가 지분을 출자해 만든 밴 사업자다. 비씨카드 19.99%, KB국민카드 14.99%, 삼성카드 14.46%, 신한카드가 1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카드사들이 코세스를 공공밴으로 미는 이유는 수수료 협상 등에서 카드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KDI공청회에서 토론 패널로 참여한 KB국민카드 부사장이 코세스를 공공밴 운영 사업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카드사가 주주로 있는 코세스가 공공밴 역할을 하면서 원가절감 혁신을 이뤄내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세스 대표는 2010년 KB국민은행 신용카드 사업그룹 부행장 출신이다. 이를 두고 `KB국민카드가 특정 민간 밴사를 공공밴으로 밀어 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이라는게 밴 업계 주장이다.
한국신용카드밴협회는 KDI의 공공밴 설립 제안에 대해 `현실성 없는 졸책`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금융결제원 등 공기관 형태로 공공밴이 운영되면 원청업체가 민간카드사가 되고 공기업이 하청업체가 되는 왜곡된 구조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공기관이 민간업체(카드사)의 하청업무를 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코세스처럼 카드사 지분참여형태로 공공밴을 설립하는 것도 전형적인 일감몰아주기의 표본이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공공밴 설립에 대해서는 한발 빼는 모양새다. 사업자간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자칫 형평성 시비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결제원을 공공밴으로 지정하자는 KDI 제안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제안을 받은 건 맞지만, 각 사업주체간 교통정리가 먼저”라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KDI가 민간 용역을 받아 의견을 제시한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며 “실현 가능성도 솔직히 먼 훗날 이야기 같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