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 콘텐츠가 만든다]콘텐츠업계 `젖줄` 공제조합 10월 출범

“1년여간 공들여 만든 애니메이션 기획안으로 금융권을 찾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신용이 부족해 융자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입니다. 신용보증기금에서 요구하는 보증인도 너무 많아요.” A애니메이션 업체 대표.

Photo Image

“초·중학생 대상 기능성 영어게임으로 수상도 했지만 시제품을 만들어 놓고는 마케팅비가 부족했습니다.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권에선 시제품만으로 투자가 어렵다고 해 결국 판권을 다른 기업에 넘겼습니다. 당시 융자만 받았어도 새로운 성장기회가 열렸을 겁니다.” B기능성게임 개발사 이사.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공연 등 콘텐츠 개발 기업인들이 최근 한 간담회에서 토로한 사연이다. 우리나라 콘텐츠업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난제인 `자금조달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자금난에 허덕이는 영세 콘텐츠기업을 위한 자금 공급원이 될 콘텐츠공제조합이 오는 10월 출범한다. 11일 목동방송회관에서 개최되는 발대식을 계기로 조합 설립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른다.

◇콘텐츠공제조합 어떤 역할 하나

콘텐츠공제조합은 콘텐츠사업자의 금융 이용불편을 해소함으로써 콘텐츠산업 진흥을 꾀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기업 신용을 보완해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신용공여 보완과 직접적인 투·융자가 콘텐츠공제조합의 핵심 기능이다.

신용도가 낮은 대다수 콘텐츠기업으로서는 자금을 금융권에서 확보할 길이 열리는 셈이다.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 약 87%가 매출액 10억원 미만, 92%가 종사자수 10인 미만 중소업체다. 담보력이 열악해 금융권 대출·보증 심사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특히 초기 개발과 계약 단계에서 자금 확보가 중요하지만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권은 신용이 낮은 기업 특성상 자금을 공급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콘텐츠기업 93.9%가 공제조합이 생기면 가입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1억원 미만 자금을 제도 금융권에서 빌리려 해도 담보력이 없어 다섯명까지 보증인을 세우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용이 부족해 제조업 대비 높은 금리를 싫어도 떠안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험도와 투자수익이 높은 콘텐츠산업 특성상 가치평가가 어려운 것도 자금조달이 어려운 이유다. 콘텐츠 분야 보증을 위해선 전문적인 금융지식과 함께 문화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필요한데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금융기관은 거의 없다. 중소기업공제조합과 소프트웨어공제조합이 있지만 제조업과 IT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담보력이 부족한 콘텐츠 기업은 감히 문을 두드리기 어렵다.

콘텐츠공제조합이 마련되면 가치평가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 이를 발판으로 제대로 가치를 평가하는 선순환적인 금융체계 구축이 가능하다.

◇자금·제도적 틀 마련이 시급한 과제

콘텐츠공제조합 출범까지 석달이 남았지만 여유있는 시간이 아니다. 넘어야할 산이 많다. 당장 자금과 제도적 틀 마련이란 과제가 앞에 가로 놓여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금이다. 콘텐츠기업 투·융자와 신용보증을 위해선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국가 예산 30억원이 배정됐지만 이는 초석 놓기에도 빠듯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선 추가 재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콘텐츠 기업 출자가 예정됐지만 영세한 산업구조상 충분한 재원 확보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기업과 국가재정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문화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면 대기업이 가장 큰 수혜자라는 점에서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콘텐츠 수출이 100달러 늘어나면 소비재의 수출은 412달러 증가한다. 2012년 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한류 덕분에 매출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홍상표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실제 한류 드라마나 음악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 삼성, LG의 휴대폰, 스마트TV 등 전자제품과 현대기아의 자동차 매출에 반영된다”며 “제조업이 한류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이어 “우리 제조 대기업의 콘텐츠공제조합 참여는 기기와 서비스, 콘텐츠를 동시에 발전시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틀 마련도 중요한 과제다.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가치평가 기준이 없어 보증이나 투·융자를 지원하기 어려운 게 산업특성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부침이 심한 산업 지형으로 한번 실패를 용인하고 이를 경험으로 삼을 수 있게 지원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홍일 아이디어브릿지 대표는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출간하기 위해 13개 출판사를 거쳐야 했듯 진흙 속 진주를 가려내는 데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수반된다”며 “가치평가도 창조경제인 문화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잘 반영해 적합한 틀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