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김정주와 컴퓨터박물관

김정주 NXC 대표는 최근 한 조사에서 1조9020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자수성가형 부자 1위로 나왔다.

재산이 2조원에 가깝지만 그를 만나보면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할 정도로 돈은 비현실적인 숫자 정도로 달아난다. 헐렁한 바지에 배낭을 메고, 모자를 눌러쓰면 자수성가형 부자 1위는 고사하고 `세련된 도시인` 축에도 못들 정도로 평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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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주도에 산다.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된 넥슨재팬의 지주회사인 NXC가 제주도에 둥지를 틀었고, 그는 이 회사 대표로 일한다. 그 흔한 기사도 두지 않고, 직접 차를 몰고 서울로 출장 올 일이 있으면 비행기나 KTX 티켓을 직접 예매하고 결제한다. 그래서 그의 동선은 함께 오래 일한 직원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부자 순위가 나올 때 `축하` 전화를 받을라치면 늘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제 주머니에 단 돈 만원이 없어 곤란할 때가 많은데, 무슨 부자냐”고.

그는 은행에만 있는 그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넥슨을 아직도 `조그만 가게`에 비유하며 세계적 게임·엔터테인먼트 기업 만큼 덩치와 실력을 키울 때까지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자신을 채찍질 한다. 필요한 투자나 기업 인수 때 `갑부처럼` 하겠다는 것이 그의 비즈니스 철학이다.

최근 3년 동안 그가 유독 정성을 쏟은 일이 있다.

그 와중에 최대 라이벌이자 동종 업계 선배 CEO가 운영하는 엔씨소프트의 최대 주주가 됐고, 세계적 장난감 레고의 온라인 거래사이트를 인수하는 등 중요한 결단이 있었지만 이 일 만큼 공을 들인 프로젝트도 없었다.

바로 우리의 아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컴퓨터박물관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달 말 제주에서 정식 개관하는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인류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온 `위대한 도구`인 컴퓨터에 포커스를 맞춘 국내 첫 박물관이다.

총 4개관으로 구성된 박물관에는 컴퓨터 탄생부터 그 중흥기를 불러온 게임의 실체적 역사가 오롯이 담길 예정이다. 지난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함께 만든 애플의 첫 컴퓨터 `애플 원`도 전시한다. 전세계 6대 밖에 남지 않은 작동되는 `애플 원`을 구하기 위해 전세계를 수소문했고,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 받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청년 김정주가 세운 넥슨은 내년 설립 20주년을 맞는다. 이제 갓 성년이 된다. 그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최대 게임기업을 넘어,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 반열에 한발짝 다가섰다.

그 성장의 역사이자, 매개체가 됐던 컴퓨터를 통해 인류의 상상력 변화가 얼마나 놀랍게 거듭되고 있는지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어린이들과 청소년의 시선에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미국엔 어린이·청소년 시기부터 수학과 함께 컴퓨터언어와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이 컴퓨터를 도구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학부모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넥슨이 세우지만, 그것을 즐기고 키우는 것은 이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몫이다. 그 중에서 제2, 제3의 김정주 대표가 계속 나오는 것이 진짜 창조적인 국가의 모습일 것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