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콘텐츠가 만든다]콘텐츠 산업, 동반성장 절실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1300개 스크린을 차지했다면, `미스터고`나 `설국열차`처럼 수백억원이 들어간 대작은 과연 몇 개의 극장을 먹어치울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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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최근 트위터에 올린 쓴소리다. 한국에서 태동한 디지털 문화 콘텐츠 웹툰과 흥행 영화의 행복한 만남 뒤에 감춰진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꼬집었다. 국내 영화계를 주도하는 몇몇 제작·배급사의 작품이 전국의 스크린을 휩쓰는 동안 다른 영화들은 몇 안 남은 스크린에서 교차 상영되거나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잡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가 유통되는 플랫폼에 해당하는 극장과 DVD 등 이차 판권 시장 중 이차 판권 시장이 고사하고, 그나마 남은 상영관은 소수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쇼박스·롯데씨네마 등 주요 영화 기업들은 제작, 배급, 유통, 상영관 등을 모두 수직계열화했다. 자사 영화가 우선적으로 극장에 걸리다보니 건강한 영화 산업의 뿌리가 될 다양성은 계속 위협받고 있다.

이런 현실은 영화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방송이나 온라인 음악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어김없이 일어난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은 괄목할 성장을 하며 산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산업화의 열매는 아직 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플랫폼 보유 업체에게만 주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3대 영화 기업의 배급 시장 점유율은 82.1%, 극장 점유율은 86.7%에 달한다. 3개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 시장 점유율은 61.8%에 이른다. 멜론·엠넷·벅스는 온라인 음원 시장의 84%를 차지한다.

플랫폼의 힘을 기반으로 드라마 제작사에 저작권의 포괄적 양도를 요구하거나, 자사 소속 가수의 음원을 알게 모르게 밀어주는 등의 불공정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콘텐츠 산업계에서도 플랫폼을 장악한 대기업과 중소 콘텐츠 업체 사이의 상생은 뜨거운 감자다.

중소기업중앙회 `콘텐츠 중소기업 경영 상황 및 애로사항`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과 거래할 때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한 중소기업 비중은 2010년 14.6%에서 2011년 18.2%로 늘었다. 불공정 행위 유형으로는 `무리한 계약 조건 요구`가 47.8%로 가장 많았고, `납품단가 인하`(19.6%) `일방적 거래선 변경`(17.4%) `계약금 지급 지연`(13%)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창조경제의 핵심인 콘텐츠 제작사가 안정적으로 콘텐츠 제작과 생산에 투자하기 힘든 상황으로 이어진다.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면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콘텐츠 산업의 경쟁이 더 이상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콘텐츠 산업 경쟁 구도는 이미 창작자와 개발자, 콘텐츠 및 앱 장터와 단말기까지 포함하는 세계적 규모의 생태계 경쟁으로 바뀌었다. 애플·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이 조성한 생태계에서 세계 누구나 자유롭게 콘텐츠를 사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가 글로벌 플랫폼을 이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국내 콘텐츠 창작자가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해외 시장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쉽다.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며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생태계가 없는 상황에서 `갑`의 지위를 이용한 쥐어짜기에만 나서면 멀지 않아 산업 전체가 고사할 수도 있다.

최세경 중소기업연구원 동반성장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를 보면 콘텐츠 중소기업은 경제 성장을 주도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며 “콘텐츠 산업 특성에 맞는 상생 구조를 마련하고 콘텐츠 공제조합 등으로 중소 콘텐츠 기업의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