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뭔가 잘하는 것이 두려운 여성 이공계생에게
오늘은 어딘가에는 있을, 자신이 뭔가 잘하는 것이 두려운 멘티에게 울산에서 이 편지를 띄웁니다. 보통 생각에 “잘 못하는 것이 문제지 잘 하는 것이 뭐가 문제야?” 할 수 있습니다. 여성비율이 낮은 전문적인 영역으로 갈수록 여학생과 여성은 실력에 비해 평가가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재능으로 오히려 심리적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톱10에 속하는 대학 심리학과 석사과정에 합격한 신입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남학생은 자기 능력 때문에 합격했다고 생각한 반면에, 여학생은 입학심사 과정에서 뭔가 잘못돼 뽑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고 합니다.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저도 힘든 박사 과정 동안 경직된 연구 분위기에 위축돼 이런 느낌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됐나?” “이 공부는 재미있는데 나만 대강 공부해서 그런가 봐!”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맘껏 드러나지 못한 지성이 힘들 때마다 이런 질문을 만들며 저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제가 택한 방법은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중요한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속도를 늦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거죠.
분명 이런 공부가 저의 기본 실력에 도움 됐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제가 치러야 했던 시간과 노력은 적지 않았습니다. 더 자신감 있게 이런 생각을 뿌리칠 수 있었다면, 연구에 리듬감을 잃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 지금보다 멀리 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제가 대학원에서 다양한 전공을 택하게 되며 예상하지 못했던 독특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 것도 한 이유입니다. 저는 수학과 대학원을 다니다가 토목과 석사를 거쳐 항공기계과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했습니다. 동기 대학원생보다 나이도 많았고 그 전에 항공·기계과 전공지식이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답니다.
더구나 토목과에서 콘크리트 구조 석사를 할 때 그 동안 자부심을 갖고 있던 촘촘하고 섬세했던 수학과 물리적인 논리를 버렸습니다. 주어진 문제와 목적을 향해 도전적으로 접근하는 공학적인 마인드를 배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난 뒤 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항공기계과 박사 공부가 의외로 쉽고 재미있었을 때, 자신감 있게 `이전에 수학이랑 토목 전공공부를 열심히 한 보람이 이제야 나타나는구나` 또는 `내가 항공기계 공부에 적성과 재능이 있었던 거구나`라고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정말 중요한 뭘 빼먹었나?`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이렇게 쉬운 거 아닐까?` 등 고민하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거나 다른 사람은 힘들게 하는 공부나 일이 너무 쉽고 가볍게 느껴졌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저처럼 뭔가 오해가 있다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반대로 쉽게 흥미를 잃어 버려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더 흥미로운 것을 찾아 나서지 마세요. 멘티 능력이 토실한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주어진 그 길 멀리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길 바래요.
From. 정나리나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연구원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
(www.wis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