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게임, 떳떳하게 소개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모든 개발자의 꿈입니다.”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를 확대하는 이른바 `손인춘 법`, 게임을 마약·알코올·도박과 함께 4대 중독 요소로 정의하고 관리하겠다는 `신의진 법` 등이 잇달아 발의되면서 게임업계에는 한숨 소리가 넘쳐났다.
![Photo Image](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6/28/438436_20130628164044_129_0001.jpg)
게임은 한국 콘텐츠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효자 산업이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유해 콘텐츠로 손가락질받고 있는 현실이다. 청소년에게는 대표적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어른에게는 `공부를 방해하는 골칫거리`일 뿐이다.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이 단속하고 규제해야 할 골칫거리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대두한 가족 간 소통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라고 강조한다.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게임 과몰입·중독 문제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 간 취미를 공유하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 안 나가도, 비싼 돈 안 들여도 `OK`
보드게임 개발자인 강우석 생각투자 부사장은 한 주에 서너 차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즐긴다. 자신이 개발한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재미있다 싶은 게임은 모두 해본다.
처음에는 가족 반응을 살피며 보드게임 개발에 도움을 얻으려 시작했지만 지금은 명실상부한 온 가족의 취미 생활이 됐다.
강우석 부사장은 “가족이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면서 대화를 하게 되고 친밀도가 높아진다”며 “아이들이 한창 사춘기여서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함께 게임을 하자고 권유하며 장난을 치면 어느새 잔소리하는 부모가 아닌 함께 웃고 떠드는 친구가 된다”고 말했다.
강 부사장은 게임이 대화가 부족한 요즘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가족이 함께 하는 공통된 즐길거리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보드게임은 여러 교육적 효과가 있는 작품도 많아 더욱 가치가 있다”고 자신했다.
인기 모바일 게임 `활` 개발사 네시삼십삼분의 소태환 대표는 최근 주변 지인으로부터 뿌듯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활을 즐겨 하는 50대 부부인데 부부싸움만 하면 실시간 대전 기능을 이용해 서로 치열하게 승부를 펼친다는 얘기다. 서로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활을 쏘아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게임을 소재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된다는 것이다.
소 대표는 “먼저 대전을 신청하고 승부를 겨루면서 자연스럽게 화해 모드가 조성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흐뭇했다”며 “가족이 소통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조금은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시삼십삼분은 순위 경쟁 위주 대회가 아닌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활` 대회를 구상 중이다. 30·40대 남성 사용자가 많은 게임 특성을 십분 활용해 아빠가 대회에 참가하면 아내와 자녀가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고 함께 응원하는 대회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높은 점수를 낸 사용자가 상품을 받는 것을 넘어 온 가족이 아빠를 응원하며 화합하는 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소 대표는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놀아야 할지 잘 모르는 아버지가 비싼 돈을 들여 자녀와 캠프를 떠나는 사례를 봤다”며 “캠프는 일회성이지만 게임은 평소 지속적으로 자녀와 취미를 공유하고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 소통 도구”라고 강조했다.
◇게임 개발자들 “나도 부모다”
온라인 게임 업계에서 손꼽히는 유명 개발자 중 하나인 김태곤 엔도어즈 상무는 최근 초등학생 자녀의 반 친구 전체를 회사로 초청해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했다. 이날 학생들은 엔도어즈 회사를 둘러보며 게임 기획, 캐릭터 만들기, 시연 등 온라인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둘러봤다.
투어를 마친 뒤에는 김 상무가 직접 강사로 나서 재미있고 건전하게 게임을 즐기는 법에 대해 당부했다. 김 상무는 “아무리 유익한 게임이라도 지나치게 하면 문제가 된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강조했다”며 “게임을 할 때는 즐겁게 하되 숙제나 공부 등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우선으로 삼고 적당한 시간 동안 게임을 하도록 자녀는 물론이고 부모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사행성 게임도 있듯이 세상의 모든 게임이 다 유익할 수는 없지만 개발자 대부분은 내 자녀도 할 수 있는 건강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한다”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만드는 개발자의 꿈과 노력을 사회에서 좀 더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영만 비앤엠홀딩스 회장은 자녀와의 소통법에 특히 관심이 많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국내 유통하기 전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해보며 적정한 등급분류를 논의하기도 하는 등 비교적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자녀와 게임을 공유했다.
김 회장은 “아이가 게임에 중독되는 것은 게임 자체가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어떤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서 도피처로 삼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면서 어떤 문제를 겪는지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대학에 진학한 두 아들 모두 지금도 게임을 열심히 하지만 취미생활의 일환일 뿐”이라며 “자신감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