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창조경제의 핵심, 기술거래소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손은 마이다스의 손인 양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그야말로 시대 혁신적인 제품들을 쏟아냈고, 사람들은 이에 감탄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에 대한 형상을 대중에게 제시한 것도 그의 공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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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오영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스티브 잡스, 단 한 사람이 이루어낸 기적이었을까. 혹시 당시 잡스의 혜안과 안목을 끝까지 믿어주고 밀어주었던 애플의 이사회 몫이 더 컸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잡스가 애플의 공동 창업자로서 자신의 카리스마로 이사회를 장악했을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지식거래` 혹은 `기술거래`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지식이나 아이디어를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좀 더 광범위한 정의에서 보면 지식거래, 혹은 기술거래는 아이디어 매매, 데이터베이스(DB) 매매, 특정 기술거래, 특허거래, 자기소개,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부러운 일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거래들이 지금도 자유롭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아이디어2셀`이라는 웹사이트(www.ideas2sell.com)에서는 평범한 주부나 회사원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올리고, 관심 있는 회사가 돈을 주고 아이디어를 사는 거래가 일상화됐다고 한다.

우리는 어떨까. 국내에도 아이디어 매매 사이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사고파는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두들 창업을 두려워하고 있다. 한번 창업했다 망하면 끝이라는 평가에 부정적 인식도 많다. 모 일간지에서 기사화된 창조경제 지수(DBCE 지수) 평가에서도 한국은 전체 35개국(OECD+중국) 중 창조경제 지표 순위가 25위다. 중국에도 밀리는 순위다.

얼마 전 방한했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S대 대학생 간의 일문일답 뒷얘기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이 창업하려면 `몰래 창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창업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하더라도 다시 학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인 반면에 우리나라 대학은 창업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에 창업을 하더라도 비밀스럽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열리는 창업경진대회도 마찬가지다. 주최 쪽에서는 `예산 털기`, 참여자 쪽에서는 `상 타먹기`로 요약되는 요식 행위로 변질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표면적으로 화려한 아이템 위주로 선정이 되고 실제 사업화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여하는 학생들도 장래 취직 할 때 제출하게 될 이력서에 멋진 한 줄을 위해서라는 것이 참 속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종의 `스펙 쌓기`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기술거래소라는 개념이나 관련 기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기술거래소라는 것이 있었고, 기술거래를 포함한 기술이전과 사업화(기술거래, 기술평가, 기술투자, 기업 인수합병) 등이 주 업무였다. 그러나 시행 몇 해 만에 사업 방향은 기술거래의 장에서 기술금융 쪽으로 틀어졌다. 정부 입장에서 기술이전과 사업화 건 수를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았던 탓이었다.

반면에 우리가 부러워하는 실리콘밸리의 사정은 어떨까. 실리콘밸리 성공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장에 내놓는 과학자와 기업가, 그리고 벤처캐피탈의 협력이라는 3박자에 있다. 즉, 아이디어를 새로운 상업적 상품으로 전환시키려는 기업가, 벤처투자자, 과학자 간 네트워크가 핵심이다.

벤처캐피탈의 활동과 역할도 대단하다. 먼저 모두가 특정 산업분야에 전문 캐피탈들로 구성돼 사전 선별력이 뛰어나다. 계약과 관련해서도 적절한 통제권을 갖고 있고, 단계별 투자 등의 효과적인 통제 매커니즘도 확보하고 있다. 투자방식도 단독 투자보다는 신디케이션을 통한 다수의 투자 방식을 택하고 있고, 무엇보다 벤처캐피탈리스트라 불리는 업무집행 조합원들은 해당 산업분야에서 임원급 경영진 재직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IP밸류`라는 지식재산 거래 전문업체이다.

우리나라는 창업을 하고자 할 때, `연대보증`을 요구받는다. 실리콘밸리의 환경과 같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에 대해 전문 식견을 가지고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디어는 뛰어나지만 창업경험이 없거나, 사업 운영 능력이 없는 사람까지 창업전선에서 실패하고 연대보증으로 인생 낙오자가 되는 악순환의 구조를 갖고 있다.

이제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기술전문가, 법률전문가, 금융전문가로 구성된 기술거래소 본연의 취지를 다시 살린 `전문 기술거래소`를 세우는 일이다. 또 이러한 기술거래소를 통해 기업가, 투자자, 과학자 간 네트워크를 새롭게 구성해 주는 일이다. 그래야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대학생이나 일반 국민도 현업을 포기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를 믿고 팔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훌륭했지만 그를 믿고 지원해 준 애플의 이사회가 있었기에 그가 더 훌륭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아마도 애플의 이사회는 IP밸류나 실리콘벨리의 전문 벤처캐피탈리스트들 처럼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를 예리하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이제 우리가 잡스를 만들어 낼 차례다. 제2, 제3의 잡스 탄생을 위해 힘써 줄 기술거래소의 역할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창조경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송오영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song@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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