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대리인 전문성 강화, 소송 관할 집중화 등 지식재산(IP)분쟁 해결 제도 선진화 방안을 위한 요구는 늘어나지만 정작 보수적인 법률 시스템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국내 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현실적인 손해배상액 제도 도입 등 법률 시스템 개선으로 특허권자 권리를 존중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일본·유럽 등 해외 IP 선진국이 특허권자 권리를 존중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특허침해 해결 시스템 때문에 특허권자 권리 보호가 취약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손해 배상액 지불하고 특허 침해 계속하기도= 우선 특허 침해시 특허권자가 받게되는 손해배상액이 문제다. 이해영 리앤목 변리사는 “IP는 무형자산이라 객관적이 가치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해외 분쟁과 비교했을 때 손해배상액이 너무 낮게 책정됐다”며 “특허를 침해 당해도 적당한 보상 체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허 소송 평균 배상액은 건당 5000만원 수준이다. 미국 건당 평균 배상액이 20억원에 달하는 것에 비해 미비한 수준이다. 특허권을 침해 받은 한 중소기업 대표는 “손해 배상액이 낮다보니 경쟁업체가 고의적으로 특허를 침해해 제품을 판매한다”며 “몇백에서 몇천만원 벌금 수준으로 비용이 나가니 지속적으로 특허를 침해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라고 말했다. 한 변리사는 “소송에서 이겨도 변호사 선임 등 소송비용에 못미치는 경우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특허 창출 의지를 막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IP 소송 매력적이지 못한 곳”=손해배상액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보니 우리나라 IP 시장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크다. 지난 2010년 특허전문 매거진 IAM는 “한국은 시장 크기가 크지 않고 손해배상액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5대 IP 강국(IP5) 가운데는 일본이 법원별 소송 가성비(효율성)가 가장 높다는 의견이다. 시장이 커서 적절한 손해배상액을 받을 수 있고 대리인 비용이 특별히 높지 않아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 소송으로 많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특허 침해 판결이 다른 나라에 영향을 주는 레퍼런스(참고) 역할도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시장이 글로벌화되면서 특허 침해 소송도 한 국가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시장이 큰 미국·일본·중국·유럽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특징이 있다. 한 변리사는 “보통 한 국가 판례가 다른 나라 소송 결과 참고가 된다”면서도 “우리나라 손해배상액 등 판례는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고 밝혔다.
◇피해 규모 입증 강화해 현실적인 보상을 해야= 미국에는 `디스커버리`제도가 있다. 특허 침해나 손해 입증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해야하는 강제 의무다. 만약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강한 패널티가 가해진다. 한 특허 전문변호사는 “우리나라에도 명령 형태로 입증 자료를 제출하게 하지만 지키지 않을 때 부과하는 제재가 약한 상황”이라며 “실무적 입장에서 손해배상액 산출이나 피해 규모를 밝힐 때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손해배상액을 낮추는 것이 기업 영업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국내 기업과 시장을 보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체계라는 지적이 많다. 전종학 대한변리사회 부회장은 “산업계에서는 기업 IP 경쟁력이 해외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을 갖췄다고 평가한다”며 “현실적인 손해배상액 도입은 초기 리스크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IP를 기반에 둔 경영 등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