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대의원 VS 모피아 1인…임종룡 號, 최원병風 넘나

`292인 대의원과 모피아 1인의 싸움.`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이 농협금융지주회장에 취임하면서 나온 얘기다.

신경분리를 거쳐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했지만 금융부문이 여전히 최원병 회장과 291인 대의원 조합장에 의해 조종되는 계열사로 치부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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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 반 사이에 금융지주회장 자리만 세 번 바뀌었다. 신충식 회장에 이어 신동규 회장까지 물러났고 전직 장관급 임 회장이 11일 정식 취임했다.

농협 내부는 현재 금융지주 상황을 `아사리판`에 비유한다. 신충식 NH농협은행장은 최원병 회장의 대리인, 조직 장악력이 뛰어났던 신동규 회장도 `경력 채우기`라는 오명을 갖고 물러났다.

임 회장은 취임식에서 “부당한 외부 경영 간섭은 단호하게 대처해 계열사의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관행으로 굳어진 최원병 회장의 예산과 인사 독점 행위를 간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임 회장은 관료 시절 농협중앙회 신경분리(금융과 경제사업 분리)를 주도한 장본인 중 하나다. 때문에 중앙회 그늘에 놓인 농협 금융부문을 독립화하는데 적임자라는 평가다. 금융정책전문가란 별칭이 말해주 듯 중앙회와 금융지주간 불협화음 봉합도 잘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291인 조합장 대의원의 막강한 인맥을 거머쥔 최 회장의 권력을 어떤 방법으로 풀어낼 지가 관건이다. 최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면 마찰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농협 고위 관계자는 “장관급 모피아(옛 재무부, 경제기획원 출신을 마피아에 빗댄 용어) 영입은 최원병 회장 권력을 금융지주로 일부 가져오겠다는 복잡한 계산이 깔렸다”며 “금융당국 또한 임 회장이 온 것에 대해 반가워하는 눈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농협중앙회는 금융당국 영향력마저 제한적인 조직이다.

실제 3·20 전산 사태 이후 금융감독원 조사가 `반쪽짜리 검사`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또 최원병 회장이 금융지주회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례도 있다. 농협 전체에서 회장이라는 호칭은 한명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경고다. 이 때문에 신동규 회장과도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임종룡 신임 회장이 취임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금융지주 독립성 보장이다. 인사와 예산 권한을 먼저 가져와야 한다. 농협금융지주 지분을 중앙회가 100% 보유한 상황에서 독립 권한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타협이 아닌 힘겨루기로 갈 양상이 크다.

농협협동조합법에 손을 대는 일이다.

최 회장이 막강한 조합장 인맥을 쥐고 있다면 임 회장은 모피아 인맥을 적극 활용해 농협법을 개정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중앙회에 쏠린 권한을 가져오고 농협금융 주무부처를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닌 재경부로 이양하는 정치적인 작업도 병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농협금융 전산의 독립화 작업도 풀어야 할 과제다. 오는 2015년까지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로부터 전산시스템을 분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전산분리 시점을 연기해달라는 로비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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