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맡고 있는 여성과학기술인이 있다. 어머니·아내 등 여성으로 삶과 과학자의 삶 사이에서 특별한 노하우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 있다.
전자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와 함께 `여성과학기술인! 멘토링 레터` 코너를 통해 연구개발(R&D)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여성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아가 미래를 이끌 여성과학기술인을 꿈꾸는 여학생과 여성 이공계 대학생에게 도움이 될 조언을 편지로 실어 보낸다.
To.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여성과학기술인에게
직장생활을 하면 남성과 달리 여성은 아침 출근 전부터 전쟁입니다. 아침식사도 챙기고 아이들 학교·어린이집 준비에 본인 출근 준비도 있습니다. 한바탕 출근 전쟁을 치르고 무사히 사무실 자리에 도착해 자리에 앉는 순간 이미 지쳐 하루를 시작합니다. “차라리 직장에 있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다”라고 말하는 여성도 있습니다.
퇴근 시간부터 또 다시 2라운드가 시작됩니다. 퇴근하면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와야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기고, 입히고, 저녁식사 준비하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 없이 폭풍같은 저녁식사를 합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설거지하고, 어질러진 집안 정리에,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준비물이나 숙제도 번번이 놓치기 일쑤죠.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들 목욕시키고 나면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됩니다. 사실상 집에 있는 시간 중 잠시도 쉴 틈이 없는 셈이죠.
여직원은 상대적으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른다`라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빈번한 퇴근 후 술자리, 업무 시간 중 담배 피는 자리, 주말 골프 약속 등에 참석이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정보에서 소외됩니다. 그렇다고 우리도 어떡하든 대책을 강구해야지요.
그래서 여성끼리 네트워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성은 저녁이 아닌 점심시간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담배나 골프 대신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즐깁니다. 상대적으로 여성이 직장 일에 덜 집중한다고 생각하는 남직원이 많은 것도 공유 시간 차이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직장과 가사 양쪽으로 많은 역할을 맡은 여직원이 앞으로 치고 나가려면 우리 여성끼리도 함께 연대하는 수밖에 없어요. 뭉치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되니까 말이에요. 혼자 빨리 가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나가야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육아 때문에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회사 생활에서 책임을 많이 져야 하는 힘든 보직 생활은 조금 더 있다가 하겠다는 생각도 하죠. 한국 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책임연구원으로 계시는 한 여성 박사님은 본인이 젊었을 때 팀장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너무 너무 바빠서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가야 하는 생활을 계속 그러면 안 되지만 적당히 포기하고 양보하는 게 나을 수도 있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정부 출연연구소에 들어오면서 나름대로는 연구와 사업을 모두 할 수 있어 좋겠다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어요. 연구소 생활을 하다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은 일을 생각대로 추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반 사업체에 다니는 것보다는 자유롭다고 하지만, 연구는 연구대로 해서 논문으로 결과를 내놓아야 하고 과제는 과제대로 추진해야 해 시간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연말마다 개인 평가는 논문을 몇 편 썼는지 평가를 해 다음해 연봉을 결정하기 때문에 연구를 손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출연연에 다니면서 그래도 애를 셋씩이나 키우면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니 나름 정말 부지런히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한 생각도 들어요.
해야 할 일이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어버이날에 초등 1학년인 큰아이가 만들어준 카드를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힘들면서도 항상 열심히 일을 하고, 더 힘들어도 열심히 일을 해주셔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낼게요. 책도 많이 읽을게요” 힘들어도 더 열심히 일하라는 채찍질인 셈이지요.
아이들이 있어서 삶이 정말 분주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힘든 시간들을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From.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선임연구원 jahwang@kasi.re.kr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
(www.wis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