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너무 작은 존재들이지만, 우리는 매우 매우 큰 가능성도 가지고 있어.”
-호킹(2004, BBC)
영국 BBC에서 2004년 제작한 `호킹(Hawking)`은 우주물리학 연구의 새 장을 연 천재과학자 스티븐 호킹의 젊은 시절을 다룬 90분 분량의 드라마다. 우리에게는 인기 드라마 시리즈 `셜록`의 주인공 탐정 셜록 홈즈 역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을 맡았다. 배우 인기가 높아지면서 유튜브에서도 드라마 전편을 볼 수 있기도 하다.
![Photo Image](https://img.etnews.com/photonews/1306/437747_20130607142037_007_0001.jpg)
드라마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루게릭병(근위축증)에 걸렸다는 진단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연구에 몰두하는 젊은 과학자 호킹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나날이 허물어져가는 육신에도, 호킹은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는 약 2년 동안 병이 급격히 진행되는 호킹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드라마는 호킹의 업적을 나열하거나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우주물리학 이론 전반을 설명하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젊은 과학도가 자신의 이론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밀화처럼 펼쳐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 197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연출해 교차로 편집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들은 호킹 박사의 빅뱅 이론을 증명해 준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다. 별과 우주, 빅뱅과 블랙홀, 시간의 시작과 종말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의를 풍부하게 보여준다.
1963년 시한부 진단을 받은 호킹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특이점 이론을 주장하던 로저 펜로즈를 만나 자신의 이론 기초를 세운다. 뛰어난 수학자였던 펜로즈는 항성처럼 거대한 물체가 사라지는 구멍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물질, 빛, 시간이 모두 사라지는 블랙홀에는 `특이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호킹을 아인슈타인 이후의 가장 뛰어난 이론과학자라고 불려준 연구의 배경이 된다.
호킹은 멈춰있던 기차 안에서 맞은편 기차가 뒤로 가자 자신이 탄 기차가 앞으로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우주의 시작을 블랙홀에서 찾았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 붕괴는 곧 탄생이 된다는 주장이다.
호킹의 과학적 발견은 혼자 힘이 아니었다. 가족과 여자친구, 그의 연구를 지지하던 동료와 선배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발표 당시에 단순한 가설일 뿐이라는 블랙홀의 존재를 사실이라고 증명해준 또 다른 두 명의 과학자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호킹은 당시 우주의 모든 것이 붕괴되는 지점이라고 믿었던 블랙홀을 반대로 새로운 시간의 탄생지점으로 바라보게 바꿔놓았다. 또 호킹은 인간으로서 종말에 해당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그 순간에 전 생애를 걸만한 연구를 시작한다. 호킹의 끈질긴 삶처럼 시간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도 현재진행형이다. 드라마 속 과학자도 말한다. 과학은 유레카의 순간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학은 정밀함, 집요함, 헌신이 필요한 학문이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