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창업자는 박수 받을 때 떠나라

“나는 0에서 1을 잘 만드는 사람입니다. 1을 10으로, 다시 100으로 키우는 역할은 다른 적임자가 하길 바랍니다.”

6월 1일로 일본 믹시 CEO에서 사임하는 가사하라 겐지 사장의 이임사 중 일부다. 가사하라 사장은 경영권을 아사쿠라 유스케 이사에게 넘긴다. 여기까지는 성공한 벤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CEO 교체의 한 장면이지만 두 사람의 나이와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의아한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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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하라 사장은 1976년 생으로 올해 나이 서른여덟이다. 1997년 도쿄대학 재학 중에 믹시를 창업했다. 구인정보 서비스에서 출발해 2004년 내놓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믹시`가 큰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비슷한 열풍을 일본에서 일으키면서 가사하라 사장은 일약 스타 CEO로 떠올랐다.

아사쿠라 이사는 겨우 서른하나다. 우리나라 대기업으로 치면 대리를 달까말까 한 젊은이다. 16년 동안 산전수전 겪으면서 경험을 쌓고 경영자로서 전성기를 눈앞에 둔 가사하라 사장이 입사 3년차 애송이에게 회사의 운명을 맡긴 셈이다.

캐시 아웃 목적의 회사 매각도 아닌데 경영권을 넘기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앞서 인용한 이임사에 잘 나와 있다. 창업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기까지는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했지만 한 단계 더 성장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가사하라 사장은 니혼게이자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2006년 상장한 후 만족을 느끼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며 “더 일찍 경영 적임자를 찾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믹시가 일본 SNS 시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같은 해 미국에서 시작한 페이스북과 현재 수준을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페이스북 기업 가치는 믹시의 240배에 이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2008년 구글에서 잘 나가던 셰릴 샌드버그를 영입했다. 그를 중심으로 회사를 이끌어갈 전문가를 모아 경영 팀을 꾸렸다. 페이스북은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해 SNS 업계 제왕에 등극했다.

아사쿠라 신임 CEO도 혼자가 아닌 다수의 힘을 모으는 길을 택했다. 자신을 포함해 5인이 협의해 회사를 이끌어나갈 방침이다. 그는 “이 상태가 이어지면 믹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스마트폰 시대에 맞는 서비스로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가사하라 사장의 2선 후퇴는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은 결단이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더 나은 인재를 중용하기란 쉽지 않다. 창업자이자 대주주라면 더욱 그렇다. 내 회사를 남에게 맡기길 두려워하는 모습은 인지상정이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스마트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젊은 나이에 대단한 성공을 거둔 창업자가 속속 등장했다. 게임이나 SNS에서는 전국구 CEO도 눈에 띈다. 더 큰 해외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현실은 장밋빛이지만 이들도 곧 성장통을 겪는다. 더 큰 성공은 더 소수의 경영자에게만 허락된다. 여기까지 끌고 온 자신이 대견하겠지만 눈을 크게 뜨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숲 속에서는 숲 전체를 보기 어려운 법이다. 대기업이든 벤처든 창업자의 용퇴는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들다. 박수 받을 때 떠나는 창업자가 많아져야 우리나라 벤처의 앞날이 밝아진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