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우리나라 극장에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에반게리온 Q`가 그 주인공이다. 1995년 TV만화로 제작된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2007년 새로운 시리즈 `에반게리온 서·파·Q·:∥`의 세 번째 극장판이다.
에반게리온이 방영될 당시 사람이 운전할 수 있는 거대 로봇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른 로봇은 움직이는 것 외에도 레이저 빔으로 적을 공격하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로봇 활동 원동력인 에너지원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에반게리온(에바)은 명쾌하다. 전기로 움직인다. 거대한 콘센트를 등 뒤에 달아야만 적과 싸울 수 있다. 콘센트가 빠지면 내장된 전기 에너지로 5분 밖에 활동하지 못한다. 로봇 운용 개념을 최대한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전기 에너지로 에바가 유명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에바가 가까이 가서 싸울 수 없는 강력한 적이 등장했다. 결국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원거리 공격밖에 답이 없다.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들지만 에바는 일본 전체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한 곳에 모아 거대한 총으로 양전자 빔을 쏴 적을 쓰러트렸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이 작전을 `야시마 작전`이라고 불렀다.
일본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다른 발전소도 많은 부분 가동이 중단됐다. 인근 지역에 전기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계획 정전을 승인했다. 도쿄 수도권 일대를 5개 지역으로 나눠 순서대로 정전을 실시했다. 대지진으로 부족한 전력을 모으겠다는 취지다. 계획 시행과 더불어 일본 국민은 전력이 부족한 지역에 전력 공급을 해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콘센트 뽑고 전기 사용을 자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런 정전 운동이 확산됐고 언론에서는 이 계획을 인기 애니메이션에서 명칭을 따 `야시마 작전`이라고 명명했다.
에반게리온 이전 만화 속 로봇은 주인공이 로봇 속에서 여러 조작 단추와 핸들 등을 이용해 로봇을 움직였다. 어린 시절 소년들의 로망이었던 `철인 28호`처럼 로봇 밖에서 리모콘을 이용해 조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로봇에 `탑승`한다는 개념이 주를 이뤘다.
에바도 대표적인 탑승형 로봇이다. 14세 소년·소녀가 엔트리플러그라는 조종실에서 로봇을 운용한다. 엔트리플로그는 액체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은 물 속에서 로봇을 움직이는 셈이다. 만화나 SF영화를 나름(?) 과학적으로 분석한 `공상과학대전`이란 책에서는 이 액체를 `운전자 멀미`의 대안으로 해석했다.
수십미터에서 10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 로봇 속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로봇이 한걸음 걷는다. 단순히 `걷다`란 행위지만 로봇 신체는 최소 10미터 정도는 위아래로 운동한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로봇 내부에 있는 탑승자는 한걸음 걸을 때마다 10미터 가량 치솟았다 내려온다.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를 행하기 이전 주인공은 멀미로 쓸어질 공산이 크다. 에바가 탑승자를 액체로 `감싼 것`은 멀미를 피하는 적절한 방법이란 설명이다. 유체 속에 있는 사람은 심한 흔들림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어머니 배속에 양수로 보호받는 태아와 같다.
에바 조종석에 가득찬 이 액체는 LCL이라고 부른다. LCL은 포플루오르화수소용액이 모티브가 됐다. 포플루오르화수소용액은 구성 성분 20%정도가 산소인 용액이다. 생물체는 이 용액안에서는 코나 입으로 액체를 마셔도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준다. 기관지를 통해 액체가 폐로 들어가고 폐에서 직접 산소를 공급해주는 개념이다. 애니메이션 속 가상의 용액 LCL을 현실에서도 볼 수 있도록 포플루오르화수소용액 상용화 연구가 한창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