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윤창중 스캔들과 삼성

바야흐로 겁을 상실한 사람들의 시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이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불과 지난주까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갑의 횡포`를 둘러싼 분노는 여전하다. 남양유업 욕설 파문,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 사고, 제빵 회장의 호텔 직원 폭행 사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착취적 갑을 문화의 병폐가 그대로 드러난 단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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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대변인 스캔들과 이들 사건은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이 지닌 오만함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탐욕하려, 또 그것을 과시하기 위해 을들을 핍박한다. 도가 지나치면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 즉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오죽하면 고질적인 갑을 관계를 고치겠다며 정부가 나서고 국회에서는 `남양유업 방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겠나.

윤 전 대변인 사태로 조기에 묻혀버린 갑의 용감한(?) 사건이 얼마 전 또 있었다. 올 들어 두 차례나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불산 누출 사고의 후속 조치와 관련해 해당 사업부장인 전동수 사장이 지난 8일 “몰라요. 저는 돈이나 벌어야죠”라고 발언한 일이다. 가뜩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불에 기름을 붙는 격이었다.

앞서 거론한 사례들과 성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부를 가진 대표 갑이다. 삼성전자를 제쳐두고 갑을 관계 개선을 논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회사 사장이 하청 협력사 직원들의 인명 사고를 초래한 현안을 대하는 태도는 극히 실망스럽다.

특히 얼마 전 임시국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에서 과징금 규모를 매출액의 최대 5%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이 바로 삼성전자라는 점을 그룹 수뇌부도 몰랐을리 없다. 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고가 또 다시 터지면서 과징금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삼성전자로선 푼돈일지 모르나 애꿎은 다른 기업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긴 사고이기도 했다.

설화로 상처 입은 전 사장을 재차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스스로 밝힌 사과와 해명에 담긴 진심도 믿는다. 다만 삼성 내부에 뿌리 깊이 박힌 `이익 지상주의`는 짚고 싶다. 물론 삼성 경영진들에게 `돈이 곧 도덕`이라는 현실을 잘 안다. 이익을 많이 내는 사장은 목에 힘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장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사장이 이렇다 보니 임직원들의 문화는 더하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라지만 삼성은 강도가 다르다. 그런 문화가 오늘의 글로벌 기업을 만들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지난 13일 삼성그룹은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를 지원할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하고 재원은 삼성전자가 지원한다고 했다. 한해 수십조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가 10년간 투입하는 돈치고는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익 지상주의인 삼성전자가 뜻밖에 미래 국가 경제의 먹거리를 위해 쾌척한다니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오로지 이익만을 지상가치로 삼는 문화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향해 더욱 관대해지길 기대한다. 그것이 사회 전반의 갑을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 민주화에 기여하는 삼성의 또 다른 책임이다.


서한 소재부품산업부장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