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334>알면 괴롭고 아프다

최서림의 시 `철들다`에 `안다는 것은 아픈 일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르면 마음이 아프지 않지만 작은 것이라도 알게 되면 타인의 아픔이 마치 내 아픔처럼 느껴진다는 의미다. 연 사흘 내리는 봄비를 보면 오가며 알게 된 노점상 부부가 안쓰럽고, 개업 몇 달 만에 문을 닫은 단골 영양탕 집도 걱정된다는 시인이다.

사단 칠정론 중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 남을 불쌍하게 여겨 괴로워하는 마음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게 된 원동력도 한글을 모르는 국민을 불쌍하게 여긴 측은지심에 있다. 글을 모르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괴로웠던 마음이 없었다면 한글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을 모르는 백성들의 답답한 마음이 세종대왕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모르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보듬어주고 감싸안아줄 수 없다. 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도 같이 아픈 것이다. 내가 어떤 사실을 몰랐다면 모르는 상태에서 마구 행동할 수 있지만, 알게 된 이후부터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생각 없이 내 뱉은 한 마디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혼자가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함께 공존하는 인간(人間)이기 때문이다.

알게 된 순간부터 기존의 앎에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몰랐을 때는 내 지식으로 남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게 되면 달라진다. 기존의 앎으로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되거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가 역부족임을 깨달아 안절부절하는 괴로움에 직면한다. 안다는 것에 생채기가 생기면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앎의 행로를 찾아 배우는 노력을 한다. 아파야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다. 아파야 새로운 앎의 새순이 돋기 시작한다. 상처 위에 피는 앎의 꽃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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