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남 밀양시에도 늦은 봄비가 내렸다. 밀양시 청도면에 위치한 송전탑 제6공구 건설현장은 봄비에 일손을 멈춘 듯, 차분한 분위기다. 조립되지 않은 육중한 철탑 구조물들이 현장 사무소 앞마당에 가득 쌓여있었다. 현장사무소 뒷산에 완공된 철탑 136호는 한쪽에만 케이블이 연결된 채 나머지 공사를 기다리고 있다.
단장면에는 공사가 중단된 121호 철탑 부지가 다소 흉물스럽게 방치돼있다. 잡초가 무성한 부지에는 구조물 기반을 만들기 위해 파내다 만 큰 구멍만 뚫어져 있다. 이렇게 방치한 채 무려 8년의 시간이 흘렀다. 한전은 당초 신고리 원자력 3호기 발전전력을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송전하기 위한 765㎸ 송전선로를 올해 말까지 준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밀양시 지역 일부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공사는 답보상태다. 총 161기 철탑 중 109기 철탑은 모두 완성됐으며 밀양지역 4개면 52기만이 공사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겉보기엔 을씨년스럽지만 밀양은 새로운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지루하게 끌어 온 밀양송전탑 건설문제가 전환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오랜 반목을 끝내고 이제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만들어졌다.
시내 한 식당에서 만난 주민은 “이제 그만 공사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대다수 주민들은 어차피 해야 할 공사라면 빨리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송전탑 문제에 전환점을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계기는 밀양시 지자체다. 밀양시는 한전이 제시한 특별지원안을 전격 수용하고 한전과 주민 간 협상을 지원키로 했다. 22일 밀양시를 방문한 김준동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지원실장도 한전의 특별지원 안을 보증하겠다고 선언했다.
박원 밀양시 경제투자과 에너지관리담당은 “밀양시는 그동안 한전과 주민 간 협상을 관망했지만 더 이상 갈등은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한전이 제시한 수정안이 그동안 밀양시가 요구한 내용을 상당부분 담아 이를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양시는 전 공무원에 이 내용을 숙지시켜 주민과의 대화에서 이를 설명하는 한편 한전과 주민 간 협의가 이뤄지도록 전 방위적 행정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철탑 건설로 인한 지가하락 등에 대한 보상체계가 미흡한 `전원개발촉진법`에 대한 개정작업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현실적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역주민 의지도 사태해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밀양시 5개면 주민들은 최근 `밀양송전탑건설해결을 위한 주민대표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송전탑 경과지 5개면 주민은 이제 한전과 현상을 통해 민원이 해결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또 주변지역 지원 사업 입법화 추진과 무책임한 건설 반대 주장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송전탑이 우리 땅을 벗어나 경유하기를 바라는 게 모두의 바람이지만 현실적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송전탑 건설이 불가피하다면 경과지역 주민을 위한 가장 현실적 대처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주민들은 “지중화 또는 무조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한다”는 일부의 주장과는 정반대였다.
무엇보다 송전선로 건설이 전력수급 불안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고리 발전소의 발전전력은 모두 영남지역에서 소모된다. 지난해 영남지역은 150만㎾의 송전선로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 공급받았다. 향후 영남지역 전력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영남지역 전력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송전선로 건설지연은 영남지역 전력수급에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 동시에 건설 지연은 막대한 비용을 들인 원자력발전소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결과를 불러온다.
김상우 주민대표위원회 실무위원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초전도케이블이나 지중화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며 “전력이 부족하고 원전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에서 무조건 우리 지역은 안 된다는 발상은 전형적 `님비`현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밀양(경남)=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