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빨랫줄`이 없다

지난 주말 밀양을 찾았다. 할이 왔지만 남녘 밀양은 아직 을씨년스럽다. 산 중턱에는 울긋불긋 진달래가 만개했지만 주위를 둘러싸고 `우리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 `철탑공사에 피눈물이 흐른다`라는 현수막이 산하의 봄을 거부하는 듯했다.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업무보고 역시 밀양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다. 산업부는 송전탑 건설 지연으로 신고리 3호기의 정상 운전이 불가능하다며 꼬인 실타래가 풀어지길 바랬다. 반면 상임위원들은 보상과 지원에서 아직도 정부가 혼동하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송전선로는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산업체나 가정으로 수송하는 통로다. 전력업계는 송전선로를 빨랫줄로 빗대어 부른다. 빨랫줄이 없으면 옷을 말릴 수 없는 것처럼 송전선로가 없으면 대용량 전기를 수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전선로를 건설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보상도 필요 없다며 무조건 반대한다. 전기 수송을 위해 반드시 `전력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할 정부로서는 `잠 못 드는 밤`이다. 이해와 갈등의 끝없는 평행선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700만㎾의 전력을 신규 공급할 예정이다. 신월성 2호기(100만㎾), 신고리 3호기(140만㎾), 율촌복합 2호기(57만㎾), 신울산복합(56만㎾), 신평택복합(48만㎾) 등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전력은 송전탑과 변전소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전국에는 지난해 말까지 4만1557개의 송전탑에 약 26만㎞의 송전선로가 설치됐다. 지구 둘레를 일곱 바퀴 돌 수 있는 길이다.

송전탑 설치는 지역주민의 동의가 우선이다. 주민들은 송전선이 마을을 관통하면 재산권 침해는 물론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 보상비를 높일 심산이라거나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라는 님비만으로 볼 것은 아니다. 송전선이 지나는 곳은 어김없이 경제·사회·환경 등의 문제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최근 보상기준을 철탑 부근 3미터에서 추가로 확대할 방침이다. 주민들은 이를 1㎞로 늘리거나 송전선로의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의 3.7%를 통해 조성되는 전력기반기금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범위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송전선로가 정격용량을 넘어서는 과부하 운전 중이다. 순간적으로 한계치인 120%를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존의 송전선로가 포화상태에 달했지만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신규 건설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수송할 선로가 없으면 아무리 고품질의 전기를 생산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최선을 선택할 수 없지만 최악을 피할 수 있는 묘수를 내야 한다. 산업부와 한전이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