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7> 제품도 서비스한다

산업사회는 제품이 시대를 주도하고, 제품을 사고파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디자이너의 역할은 제품을 기능적이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해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한 역할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상품의 질이 상향 평준화된 지점부터 그 방법론의 연구가 본격화됐다. 바로 서비스 디자인이다. 이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제조업에서도 제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를 도입한 사례가 많고, 서비스 도입과 활용이 획기적 경쟁 전략으로 떠오르는 것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생산물은 쓰다가 버릴 물건이 아닌 서비스로 생각해야 한다.”

- 〈요람에서 요람으로〉 윌리엄 맥도너, 미하엘 브라운가르트

서비스 디자인은 처음에는 영국에서 교육, 교통, 보건 등의 공공서비스 산업에 쓰였던 용어다. 시대와 환경 변화에 맞춰 우리 산업과 경제에서 디자인이 기여해야 할 역할과 기능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 디자인은 그동안 이름만 붙지 않았을 뿐 디자인이 가졌던 정신을 담고 있다. 환경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제품 디자인을 모두 포함하는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는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전달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포괄적으로 이해해 전반적인 `경험`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모든 분야의 전문 디자이너를 고루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창의적으로 실체화할 수 있는 디자인 에이전시가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의 경험의 질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다.

차량 내비게이션은 지도를 읽고 도로, 주소, 주행 상황 등 각종 정보를 처리해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터넷상에 있는 지도와는 달리 운전자와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 주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그 목적에 부합한다.

이노디자인은 내비게이션의 이용자인터페이스(UI) 디자인을 위해 이용자경험(UX)을 분석해 적용했다. 기존의 UI를 이미지만 변형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서비스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떤 의미를 고객에게 전달할 것인가?`의 원론적인 물음에서 시작했다. 운전자가 차량에 탑승해 내비게이션을 켜는 것부터 목적지에 도착해 시동을 끄는 순간까지의 접점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해결해 총체적인 경험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우선 내부 워크숍을 통한 경쟁사와의 비교, 분석과 개선 아이디어의 공유점을 찾아내 향후 UI의 컨셉트를 도출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후 사용자 리서치 계획과 리크루팅, 코스를 설정한 후 디자이너가 운전자와 동승하는 작업을 거쳤다. 옆에서 자극을 주지 않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사소한 운전 습관, 반응들을 스케치했다. 이 같은 필드 테스트는 주행 중 내비게이션이 다양한 환경에 보이는 반응, 그에 대한 사용자 행동을 관찰하는 데 꼭 필요했다.

필드 테스트가 끝난 후 자세한 리서치와 집단심층면접(FGD)을 실시해 사용자의 요구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취합한 요구와 개선점을 바탕으로 간단하고 필요한 기능이 강조된 UX를 설계한다. 이렇게 설계된 UX를 바탕으로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UI가 만들어진다. UX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UI는 고객의 뇌리에 각인되는 서비스가 된다. 또 서비스의 기억을 강화하고 유도, 통제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다.

잘 만들어진 UI는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사물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구매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사용자의 경험를 포함하는 디자인은 형태가 없는 서비스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제품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디자인의 가장 오래된 형태다. 우리 주위에 부피가 있고 공간을 차지하는 사물 모두가 디자인 제품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범위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지금은 제품 디자이너가 제품 디자인만 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제품 디자인이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도 한몫을 담당하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품 디자인은 기업의 서비스 목적과 가치를 일관성 있게 담아낸 제품으로 완성돼야 한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twitter@YoungS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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