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IT 산업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어떻게 법·제도를 정비하고 R&D와 서비스 개발을 진행하는지에 따라 세계 시장을 이끄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선도 모델을 정착시키지 못한 채 `팔로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날 토론에 나선 각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웰니스IT 산업이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다양한 조건을 꼽았다. △제대로 비즈니스 가치가 평가 받을 수 있는 제도 △집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명확한 영역과 대상 구분 △지속성장이 가능한 국책 R&D 과제 △진정성·개방성·국제성을 갖추기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이 거론됐다.
토론에는 이기원 서울대학교 교수·이영준 에임메드 대표·채이식 아이디어팜 대표·문훈기 나누리병원 실장이 참여했다. 박승정 전자신문 정보사회총괄 부국장이 좌장을 맡았다.
◇제대로 가치 평가 받을 수 있는 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웰니스IT 산업이 현장에서 유용하다는 증거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료서비스와 ICT를 접목한 사업을 수행하는 이영준 에임메드 대표는 “비즈니스 모델이 제도권에 안착해 나가야 산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보험업계에 영업을 하면서 웃지 못할 농담으로 `현미`를 경쟁자로 말한다”며 “보험설계사들이 고객에게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현미보다 웰니스 서비스가 더 유용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비유했다.
이를 위한 제도적인 방법으로는 `실용화 R&D`를 꼽았다. 이 대표는 “원천기술 R&D와 함께 웰니스IT 산업이 제도권 내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R&D도 필요하다”며 “실제로 효용성이 있다는 점이 국책 R&D를 통해 입증돼야 민간 부문에도 도입되고, 이어서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이 창조되며 민간 시장에서 가격이나 품질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는 등 비제도권의 자생력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웰니스IT에 대한 R&D는 대부분 측정기 등 하드웨어 분야에 집중됐다”며 “앞으로는 각종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한 서비스 개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한 방법론 R&D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으로 웰니스 산업군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훈기 나누리병원 실장은 “u헬스케어도 그랬듯, 새로운 헬스서비스 도입에는 기존 의료산업과 갈등이 불거지기 십상”이라며 “웰니스 서비스 영역과 대상을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의원은 “각 이익단체의 먹거리가 달린 문제라 입법 과정에서 로비도 많고, 모호함을 해결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선도적으로 제도를 마련하고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다른 국가에서 이미 제조와 상용화가 완료된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해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빠른 움직임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사용자 관점의 R&D 과제 마련돼야
채이식 아이디어팜 대표는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국책 R&D 과제를 `무정자 R&D`라고 비유했다. 무정란은 아무리 품고 있어도 부화가 이뤄지지 않듯, 우리나라 R&D도 과제 이후 진화 단계가 거의 단절돼있다는 것이다.
채 대표는 “대부분 국책 R&D는, 예를 들어 10억원 규모라고 하면, 그 10억원을 다 쓸 때 까지만 고용을 유발한다”며 “10억을 R&D에 투자하면 그 뒤 1000억, 1조원 규모의 산업으로 이어져 고용유발과 경제효과의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제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무정자 R&D의 이유를 사용자 관점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채 대표는 “R&D 과제를 고안할 때부터 사용자 관점에 대한 시각이 없고 그에 대한 모니터링도 없기 때문에 `쓸 사람이 없는` R&D 과제를 계속 양산한다”며 “과제가 끝나면 고용도 끝나고, 이후에는 새 과제를 따러 돌아다녀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채 대표는 이어 “웰니스IT도 초기 단계에는 국가 대형 R&D 과제를 통해 정착시켜야 하는데, 사용자 관점의 미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입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 대표는 웰니스IT 서비스 또한 사용자 관점 적용이 중요하다고 봤다. 당뇨병 환자 관리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그는 “여러가지 당뇨환자 관리 프로그램이 있는데, 대부분 프로그램을 보면 그에 따라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의지가 강한 1%에 지나지 않는다”며 “나머지 99%는 서비스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비현실적인 관리 체계 대신 환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 데이터를 쌓아 정확도를 높이는 기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웰니스IT 서비스에도 이러한 관점 적용이 필수적이다.
강 의원도 이에 대해 “국책 R&D를 보다 지속성장이 가능하도록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했다.
◇진정성·개방성·국제성 갖춰야
이기원 서울대학교 교수는 “웰니스IT의 핵심 키워드는 `진정성`으로,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역할 모델을 누구로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구글·페이스북도 개인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듯이, 생태계 내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플랫폼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웰니스IT 산업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을 키워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개방형 혁신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는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국민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하다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다”며 “정부기관과 국회, 다양한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수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이 교수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신사업이 되도록 과학기술, 문화, 복지 등 웰니스와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나 상품 개발을 위한 글로벌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산업을 육성시키려면 생태계를 키워야 하고, 웰니스 산업 전체를 육성하는 초석이 되는 것이 웰니스IT"라며 ”토론에서 나온 제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