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쓴 약이 단 약보다 몸에 좋다는 말이 있다. 약은 써야 제맛이라는 말. 마찬가지로 몸으로 쓴 글이 진짜 글이다. 온몸으로 체험한 이야기를 가슴으로 쓰는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몸에 `쓴` 약과 몸으로 `쓴` 글. 둘 다 `쓴`이라는 말이 쓰였지만 전혀 다른 의미다. 앞의 `쓴`은 맛이 `쓰다`는 말이고 뒤의 `쓴`은 글을 `쓰다`는 의미다.
약을 먹은 다음 쓴 맛이 느껴지면 몸부림을 친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쓴 약도 많다. 그런 약일수록 몸에 좋다. 마찬가지로 몸부림치면 몸으로 쓴 글일수록 다른 사람을 몸부림칠 정도로 동감과 공감을 일으켜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이다. 단순히 머리로 쓴 글은 우선 글맛이 없고 색깔도 드러나지 않으며 머리만 아프다. 몸을 써야 몸으로 글을 쓸 수 있다. 몸으로 쓴 글일수록 수작(秀作)이 많다. 수작(秀作)은 잔머리로 쓴 글이 아니라서 잔꾀를 부리거나 절대로 수작(酬酌)을 부리지 않는다. 뛰어난 작품, 수작(秀作)일수록 온몸으로 몸부림치면서 쓴 수작(手作)인 경우가 많다.
가끔은 볼펜이나 연필, 만년필을 써서 글을 쓰면 느낌이 다르다. 퇴화된 손가락 근육도 발달하고 컴퓨터를 써서 글을 쓰는 것보다 또 다른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몸으로 글을 쓰고 난 뒤에 느끼는 맛은 쓰지 않다. 그렇게 몸으로 글을 쓰는 동안은 쓰지만 글을 쓰고 나면 쓰임이 달라진다.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썼지만 그래도 쓴 약을 먹을 때보다는 쓰지 않다. 쓰지 않으면 쓰임이 없다. 바빠서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지 않아서 바쁜 것처럼, 쓸 게 없어서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쓰지 않아서 쓰임이 없는 것이다.
글을 쓰면 쓰임도 달라지지만 쓰면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약도 된다. 살아가면서 체험한 인생의 쓴맛을 글로 쓰면 쓴맛도 단맛으로 바뀔 수도 있다. 쓴 것을 자꾸 씹으면 단맛이 나듯이 쓰라린 삶의 교훈도 자꾸 쓰다보면 삭혀지고 숙성돼 단맛으로 거듭날 수 있다. 쓰린 속도 쓴맛으로 다스려야 빨리 나아지는 것처럼 쓰라린 인생도 자꾸 글로 쓰면 쓰임이 달라진다. 머리를 써야 생각근육이 말랑말랑해지지만 신체근육을 자꾸 쓰면 근육이 발달해서 단단해진다. 쓰면 쓸수록 쓰임이 달라지는 게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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