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라디오·인터넷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했다. 대통령 취임 후 4년 5개월간 거의 빠짐없이 월요일 격주로 국민을 찾아간 라디오 연설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제 며칠 뒤 대통령직을 떠나 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청와대가 라디오연설을 시작한 것은 2008년 10월이다. 총 109차에 걸쳐 진행된 라디오 연설은 미국의 `노변정담`(fireside chat)을 벤치마킹한 대국민 소통방식이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던 지난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뉴딜정책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난롯가에 대통령과 국민이 둘러앉아 국정현안과 새 정책에 대해 친근하게 직접 대화를 나눈다 해서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불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 달에 두 번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정치·경제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의 얘기를 국민에게 전달했다. 대통령에게 라디오연설은 국정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전하는 통로였다. 천안함 용사들을 떠나보내는 방송에서 대통령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목이 메기도 했다. 런던 올림픽의 감동과 기쁨을 나눌 때는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2011년 라디오연설에선 젊은이들에게 “대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이 되면서 안전한 직업을 택할 수도 있지만, 21세기에는 창의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세계를 무대로 더 넓은 기회에 도전하기 바란다”는 주문도 했다.
라디오 연설에는 대통령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진솔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제가 처음부터 큰 뜻을 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는 밥이나 제대로 먹고, 젊어서는 월급 나오는 일자리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으로 출발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포항에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친 이 대통령의 유일한 꿈은 번듯한 직장에 매일 출근해 일하는 `월급쟁이`였다. 결국 명문대 진학과 현대건설 입사, 사장까지의 초고속 승진 등 샐러리맨 신화로 우뚝 선 자수성가의 전형이 됐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를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쳐 젊은이들과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맡은 것은 어떤 특별한 소명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한국은 금리 인하, 통화스와프 체결, 감세, 재정지출 확대 등에 힘입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실물 경제지표를 보면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경제는 성장했으나 소득보다 물가가 더 올라 실질 소득이 되레 줄었다. 서민들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하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서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서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권력형 게이트 사건들이 터지면서 그의 인기는 바닥을 맴돌았다. 임기 말년이 되면 늘 그래 왔다. 여러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며 물러났다. 이 대통령도 고별연설에서 “지난 5년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생각을 달리하고 불편했던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면서 “국정의 책임을 내려놓는 이 시점에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의 공과(功過)를 지금 평가하기엔 이르다. 정치적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대통령은 이제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국민 속으로 돌아온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