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양대 축으로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 제한과 위상 축소로 당초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다.
야당이 대선 당시 공약을 번복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존치를 주장하며 미래부 역할을 제한하는 행보에 대해서도 우려감이 상당하다.
새 정부 정부조직개편안을 논의하는 국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전자신문은 7일 `미래창조과학부 올바른 조직개편 방향`을 주제로 긴급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토론자들은 인수위 발표와 달리 미래창조과학부가 핵심 기능과 역할을 제외한 채 축소되고 있어 과학기술·ICT 발전과 성장을 담보하는 데 한계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창조경제 견인차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은 물론이고 ICT 주요 기능을 총망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야당의 방통위 존치 주장에 대해서는 정파적 이해의 산물로 규정했다. 방송통신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좌담회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성철 미디어 공공성과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운영위원
김형중 미래IT강국전국연합 상임대표
송희준 정보·방송·통신 발전을 위한 대연합 운영위원장
이상목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 사무총장
임주환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감사
사회=박승정 전자신문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사회(박승정 전자신문 정보사회총괄 부국장)=새 정부가 제시한 창조경제를 실현할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마련한 미래부 개편안이 야당의 반대로 핵심 기능이 제외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콘텐츠(C)·플랫폼(P)·네트워크(N)·기기(D) 생태계 통합이 아닌 분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임주환(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감사)=미래부는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 동력 발굴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부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망라한다고 했지만 국회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인수위도 보다 명확하게 미래부 기능을 제시해야 했다. 이전해야 할 주요 기능을 기존 부처에 맡기다 보니 개별 부처 이기주의와 부처간 논쟁만 양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학기술, ICT 모두 핵심 기능이 제외됐다. 인수위가 호랑이를 그렸지만 자칫 고양이 그림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애초 미래부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주요 기능을 미래부로 넘겨주지 않는 기존 부처는 부처 지키기에 성공했다고 할 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될 지는 회의적이다.
◇송희준(정보방송통신 발전을 위한 대연합 운영위원장)= 대선 당시 여당은 물론 야당도 과학기술과 ICT를 중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과학기술과 ICT가 중요하다는 시대 정신에 공감한 것이다. 하지만 인수위 발표와 달리 정부조직법 개편안에는 과학기술과 ICT 모두 생태계 핵심 요소가 누락됐다. 기대에 못 미친다. 국회가 이런 부문을 보완해야 한다.
◇김성철(미디어 공공성과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운영위원)=창조경제 실체와 의미,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과학과 경제를 연결하는 발상은 위험하다. 경제를 중시한다면 ICT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첫 단추가 잘못됐다.
ICT전담차관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차관 역할은 장관 보좌일 뿐이다. ICT 전담차관이 결정하더라도 장관이 번복하면 그만이다. ICT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부가 CPND를 통합하겠다고 했다. 이 중 그간 취약했던 콘텐츠를 활성화하는 방향 혹은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디지털콘텐츠를 미래부로 이관한다고 했지만 콘텐츠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태부족이다. 임베디드SW도 제외됐다. ICT전담이라는 의미가 퇴색됐다.
◇김형중(미래IT강국전국연합 상임대표)=미래부에 ICT 전담차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 환영했지만 알맹이는 모두 제외됐다. 앞서 거론된 것처럼 CPND 통합은 처음부터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과학기술, ICT 모두 허울 뿐이다. 미래부가 CPND를 제외한 ICT, 연구개발 핵심을 간과한 과학기술을 담당하면 전담부처라고 할 수 있을까. ICT와 과학기술은 명분일 뿐 자칫 미래부가 정치 쟁점을 다루는 이상한 부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상목(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 사무총장)=박근혜 정부가 강조한 게 과학기술과 ICT다. 과기와 ICT를 국정 운영 중심에 놓고 미래부를 핵심부처로 약속했다.
하지만 미래부를 구체화하고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 공룡부처라는 여론의 역풍도 감수해야 했다.
미래부가 연구개발을 둘러싼 부처간 벽을 허물고 단계별 단절을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기초기술 연구개발은 미래부로, 산업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원화했다. 이 구조로는 과거처럼 부처간 갈등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연구개발의 중요한 축인 대학산학협력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 실종됐다.
전주기적 연구개발 시스템으로 보면 상당히 취약한 구조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자력 연구개발을 담당하도록 한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원자력 폐기물 처분 기술은 30~50년을 내다봐야 한다.
◇사회=국회가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민주통합당이 대선 당시 공약을 번복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기존 방통위 기능 중 통신 진흥만을 미래부로 이관하고, 방송과 통신 규제 일체를 방통위에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철=민주당은 대선 당시 정보통신 독임제 부처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방송 규제는 합의제 위원회가 담당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파했다.
현재 민주당 입장은 대선 공약을 뒤짚은 것이다. 공당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자,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민주당의 입장 번복은 국가의 미래가 아닌 정파적 이해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방통위 합의제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사실은 민주당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방통위가 모든 현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지난 5년간 방송산업 활성화 실패는 차치하더라도 방통위의 패착은 방송에 대한 정치 과잉에서 비롯됐다. 정치 과잉을 해소하는 게 근본적 해결책이다.
정치 과잉을 줄이기 위해 정책은 미래부가, 방송수신료·공영방송 임원 선임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영역은 방통위가 담당하는 게 적절하다.
민주당의 방통위 존치 주장은 지난 5년간의 구태와 패착을 반복하자는 것으로 밖에 이해 안된다.
◇송희준=행정학에선 진흥과 규제를 구분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민주당 일부 의원은 방송은 진흥과 규제가 확실하지 않다며 방송 정책 일체를 방통위가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 규제와 진흥을 구분, 미래부로 통신 진흥 기능을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신은 규제와 진흥간 구분이 가능하고, 방송은 규제와 진흥간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논리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시대적 트렌드도 간과하고 있다.
진흥과 규제를 분리, 역할을 분담하도록 해야 한다.
◇임주환=진흥과 규제는 동전의 양면으로, 뗄레야 뗄 수 없다. 배기량을 제한하는 등 법률로 제한하는 건 규제이지만 전기차 개발이라는 진흥의 기능도 할 수 있다. 진흥과 규제 분리는 말이 안된다.
핵심은 진흥이냐 규제냐가 아니라,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보장할 수 있느냐다.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정답은 없다. 다만 독임제 장관이 결정하는 구조보다 여러 사람이 합의하는 게 상대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김성철=방송은 산업성과 공공성을 모두 지닌다. 방송의 모든 영역이 공공성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특별하게 공공성을 필요로 하는 방송 부문이 있다. 이 부문이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송 전체를 공공성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이상목=원자력안전위원회 주요 기능은 사실상 규제다. 원자력 관련 진흥과 규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과 원자력 연구개발을 진흥으로 보는 건 비전문가적 발상이다.
원자력 규제 대상은 연구개발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소다. 제대로된 원자력 규제를 위한 연구개발은 필수다. 공인되지 않은 부품 문제로 원자력발전소 안전이 사회문제가 된 것처럼 어떻게 하면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높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대학의 산학협력을 교육부에 남기는 것도 문제다.교육부 혹은 지방대는 산업체와 대학이 협력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산학협력으로 간주한다. 인력양성이 산학협력의 전부는 아니다. 미래부가 연구개발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한 것은 인력양성은 물론 일자리 창출, 상품화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보다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지식 생산 거점인 연구소와 대학에 거점을 만들어 효율적인 연구개발, 산학협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산학협력이 교육부에 남을 경우에 대학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형중=정부조직 개편과 관련, 방송과 원자력, 식품 등 분야에서 진흥과 규제 등 이분법적 시각이 팽배하다. 이같은 이분법적 분류는 부처 이기주의다. 앞으로 어떻게 잘 할 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앞서 나온 것처럼 강력한 규제가 진흥 기능을 할 수 있다. 방송 진흥과 규제를 나눌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인수위가 방송 인허가 업무를 미래부가 담당하도록 하자, 야당은 방송 정책의 방통위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인수위와 야당 모두 잘못이다.
미래부가 창조경제를 리드하는 부처라고 했는데 민감한 정치적 쟁점에 휘둘려 과학기술과 ICT 정책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 우려된다. 야당의 방통위 존치 주장은 궁색하다.
◇사회=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적지않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오는 14일 정부조직개편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제대로 된 정부조직 개편을 위한 고견을 제시해 달라.
◇김형중=미래부가 연구개발 업무를 일원화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산학협력을 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현재 계획에는 총괄기획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과 법률이 수반돼야 한다. 연구개발 예산도 미래부로 통합해야 한다. 부처별로 분산될 경우에 과거와 마찬가지로 중복투자는 물론 부처간 영역 다툼이 불가피할 것이다.
미래부는 박근혜 부처나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껍떼기만 갖고 시작해선 안 된다. 박근혜 정부에 미래부가 오명을 남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성철=분명한 건 5년 뒤에 미래부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새 판을 짜라고 주문하고 싶다. 제대로 된 부처란 과학기술과 ICT를 각각 제대로 할 수 있는 부처라는 사실이다.
미래부와 방통위간 연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점도 우려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방송통신융합이 아예 불가능하게 될 지 모른다.
◇송희준=대한민국 건국 이후 과학기술과 ICT는 서로 다른 경로로 발전했다. 과학기술과 ICT 각각 고유의 문화와 제도, 관행, 공동체가 있다. 서로 다른 걸 합치면 적응하는 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최소화해야 한다. 미래부 장관이 잘 해야 한다. 미래부와 방통위간 기능 연결과 인력 교류도 고려해야 한다.
◇임주환=박근혜 정부가 과학기술과 ICT간 통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물리적 통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느냐는 지켜봐야 한다.
물리적 통합은 강제적으로 할 수 있지만 화학적 결합은 조건을 잘 맞춰줘야 한다. 상호 이질적인 과학기술과 ICT간 화학적 결합이 걱정이다.
각각 분리하는 게 정답이다. 국회가 제대로 논의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점은 반쪽짜리는 안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도, ICT도 반쪽씩만 갖다놓는 건 안된다. 과학기술과 ICT 각각 온전하게 발전·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상목=원자력안전위원회가 독립된 위원회에서 미래부로 편입돼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되는 것도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이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세계적 컨센서스다. 그럼에도 .불과 2년여만에 장관급을 차관급으로 내린 건 이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과학기술과 ICT가 큰 역할을 한다는 건 대세다. 당장 미래부는 과학기술과 ICT간 괴리를 줄이고, 최대 효과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물리적 통합을 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방안도 도출해야 한다.
◇사회=이른 시간에 진지한 토론 감사하다. 국회가 이 자리에서 제기된 비판과 대안을 합리적으로 수용, 최적의 대안을 도출하길 기대한다. 새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정진할 수 있도록 지속적 관심과 지원 부탁한다. 장시간 토론 재차 감사하다.
정리=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