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출제자가 응시까지 한다니…이게 무슨일?

전기사용을 똑똑하게 관리해 국가전력의 공급과 수요를 최적화하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우리 후대가 사용할 소중한 인프라다. 그런데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그 가치가 퇴색돼 안타깝다. 스마트 그리드 기반시설인 원격검침인프라(AMI) 구축 사업 비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사원과 주무부처도 파악에 나섰지만 해당 사건 자체만 주시할 뿐 사건 배경이나 장기적 관점의 사업성이 간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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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성능평가를 앞두고 한국전력과 특정업체 직원이 해당 장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어 감사원이 감사 중이다. 특정업체는 핵심부품 제조업체면서 평가 장비를 개발했다. 자신의 부품을 채용한 제품을 자신이 만든 장비로 테스트했다. 이 업체가 시험 출제자이면서 응시자인 셈이다. 누가 봐도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 업체가 평가 장비 제작에 참여한 배경은 더욱 황당했다. 지난해 AMI 구축 사업을 위해 한전이 발표한 장비 개발 용역사업 공고에서 `엔지니어링 사업자`라는 자격요건이 고시됐다. 한전이 공고 두 달 전 업계에 밝힌 용역사업 기안에 없던 항목이다. 공고일부터 입찰마감일까지 1주일인 점을 감안하면 추가 자격요건 획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부품업체는 한전의 사업공고 전에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한전 감사실은 당시 발주부서와 계약부서 간 소통 실수로 최초 서류에서 누락됐다고 설명했다. AMI 부품업체가 엔지니어링 사업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기업조차도 이런 자격을 갖춘 곳은 찾기 힘들다.

감사는 지난해 이어 두 번째다. 모두 한전 전력연구원과 특정업체 간 유착으로 추측됐다. 철저한 원인을 밝혀내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앞으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새해다. 업계에겐 국내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 바쁜 한 해다. 지식경제부와 감사원은 우리 후손이 사용할 인프라라는 사명으로 철저한 사태 파악에 나서야 한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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