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246>잡것들은 작가들

로마 시대 키케로는 이런 경고를 세상에 날렸다. “잡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책을 내려고 한다.” 그런데 위대한 작품을 쓴 작가들은 거의 모두 `잡것들`이었다. 잡것들=작가들, 지식채널의 경험은 안주인이라는 동영상 메시지 중의 하나다. 세상의 잡것들은 오늘도 지금 어디선가 잡다한 일상을 글의 소재로 작품을 구상중이고 실제로 작품을 쓰고 있다.

무명도 이름이 있다. 무명의 이름은 무명씨(無名氏)가 아니다. 단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고통의 뒤안길에서 헤매고 있고 서러움의 눈물을 뒤돌아서 흘리고 있으며, 아픈 그림자를 수도 없이 밟아오고 있다. 그렇게 힘든 세상을 살면서도 언젠가는 자기 이름 석 자로 된 글이 세상의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읽고 감동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샘물을 길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창작의 원료는 작가의 아픔과 슬픔이다. 배고픔이고 굶주림이 글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글이 안 나온다. 위대한 작품은 위대한 작가가 쓰는 글이 아니라 평범한 작가가 일상에서 체험한 아픔과 슬픔, 몸부림과 굶주림을 진솔하게 쓴 결과다. 시작부터 위대한 사람은 없다. 위대한 시작이 본래부터 있는 게 아니라 뭔가 시작해야 위대함으로 가는 길을 만나는 것이다. 누구나 잡다한 경험을 하지만 그 경험 속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추가하기는 쉽지 않다.

작가가 글을 쓰는 원동력은 체험적 상상력이다. 작가의 체험적 상상력에는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깨달은 체험의 폭과 깊이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작가의 체험을 기반으로 체험하지 않은 세계나 영역에 대한 상상력도 발동된다. 체험적 상상력으로 쓰이지 않는 글은 호소력이 없고 독자들의 공감대를 확산시킬 파괴력이 없다. 비록 지금은 무명의 잡것이지만 언젠가는 유명 작가는 안 되어도 내 이름 석 자로 된 글이 세상에 알려질 날을 고대하는 것이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어느 목욕탕 간판의 다의적 의미를 믿으면서 오늘도 좌절의 눈물을 원료로 글을 쓰는 것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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