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립만배(一粒萬倍)라는 말이 있다. 한 톨의 벼를 뿌리면 일만 톨의 쌀이 된다는 뜻이다. 이슬도 많이 모이면 바다를 이루듯(露積成海) 작은 것이 큰 것을 이룰 수 있다(以小成大)는 의미로도 통한다. 요새 식으로 얘기하면 내 한 표, 한 표가 나라를 바꾸고 역사를 바꾼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작은 정성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어느 블로거의 글 하나. 투표율이 63%인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는 37%였다. 10명 가운데 4명 가까이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10명 가운데 4명이 투표하지 않는다면 투표한 내 한 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되든, 안 되든 내 표의 가치는 당락에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투표율이 세대별, 지역별, 업종별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면 말이 달라진다. 20대 유권자와 60대 이상 유권자간 지지후보가 일정하게 갈린다면 한 표의 가치는 경우에 따라 가치 있는 표가 될 수도 있고 전혀 무의미한 표가 될 수도 있다. 당락을 기준으로 할 때의 의미다.
투표율로만 보면 20대는 50%를 밑돌고, 60대는 80%에 가깝다. 지지후보에 대한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두 세대간 투표율을 대입해 투표할 경우 20대의 투표는 항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매번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0대는 기권도 하나의 권리라며 당당하다.
반대로 60대의 투표는 항상 유의미하다. 투표할 때마다 내가 찍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 하나쯤 투표를 하지 않아도 이길 가능성이 높은데도 60대 이상의 유권자는 열심히 투표장을 찾는다. 그게 60대 이상의 표심이다. 한 표의 의미도 정확하게 이해할 뿐더러 겸손(?)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지율이 박빙일 때 얘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투표율이 70% 이상이고 후보간 지지율이 근접했다면 20대 한 표의 위력은 기대 이상이다. 20대의 한 표 가치는 두 배 이상으로 올라간다. 물론 일정한 패턴을 가정했을 때의 얘기다. 투표 결과를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60대 이상의 투표 가치는 그대로다.
변화를 바란다면 20대는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 반대로 현재의 상황이 유지되길 바란다면 60대 역시 투표해야 한다.
내 투표는 어떤 의미일까. 어느 순간, 내 한 표가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한 표차로 장악한 나치당을 기반으로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으며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런가 하면 1875년 프랑스는 한 표차로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한 표의 의미다. 민주주의의 시발점은 투표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여자도 남자도 투표를 해야 한다. 가진 자도, 가지지 못한 자도 그렇다. 성한 사람도, 성하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불문하고 투표에 나서야 한다. 경영자와 노동자, 보수와 진보도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치가 싫어서 혹은 거부 자체도 투표의 행위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투표하지 않을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투표하지 않는 행위는 나와는 다를지 모를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투표는 한 톨의 희망을 뿌리는 행위다. 변화를 추동하고 싶다면 투표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 아니면 차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다. 한 표, 한 표가 모여 시내를 이루고 바다가 된다. 작은 한 표가 역사를 바꾼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