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기술 전쟁 시대다.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잘 보호하고 지키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최근 삼성·애플 간 특허 분쟁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애써 만든 기술도 보호하고 권리화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 많은 이들이 배우게 됐다. 특허만큼이나 내 기술을 효과적으로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술자료임치제도(이하 기술임치제도)는 그런 측면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상당히 유용한 제도다. 기술 유출이나 탈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도 이 제도를 활용하면 협력사 도산이나 파산 시 장기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시스템 유지 보수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제도 도입 5년 만에 기술 임치 건수가 3000건을 넘어서며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안전장치로 자리잡았다. 전자신문과 중소기업청,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 공동으로 기술임치제도 정착의 의미, 대·중소기업 활용 사례, 향후 개선점 및 활성화 방안 등을 집중 조명했다.
참석자(가나다순)
박종배 드림월드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반용음 인피니트헬스케어 사장
안승윤 SK텔레콤 전무
양봉환 중소기업청 기술혁신국장
장대교 중소기업청 공정혁신과장
정영태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
※사회=이완식 전자신문 지역총국장
◇사회(이완식 전자신문 지역총국장)=중소기업 기술 보호를 목적으로 기술임치제도가 도입된 지 5년여 만에 임치건수가 3000건을 돌파했다. 그간 정책 추진 경과 및 3000건 돌파 의미, 주요 성과에 대해 말해 달라.
◇정영태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연도로만 보면 만 5년밖에 안 됐다. 지난 9월 기준으로 3000건이 넘었고, 현재는 3300건을 넘었다. 수치로 보면 좋은 과정을 거쳐 온 제도로 정착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신용사회로 가는 데 이 제도가 기업이나 사회에 시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간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을 탈취당하거나 유용당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 제도가 정착되면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에 큰 보탬이 됐다. 제도가 중소기업에 많이 보급되고 알려지면서 대기업의 기술 요구가 2010년 22%에서 2011년 15%로 줄어들고 있다. 부당거래 건수도 같은 기간 80%에서 65%로 낮아졌다. 최근 기업들이 특허를 출원하지 않고 영업상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블랙박스화하는 추세에서 임치제도가 더욱 각광받고 있다. 우리 기업의 신뢰 기반, 대·중소기업 간 중요한 협력 한 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사회=중기청에서 중소기업 기술 보호를 위해 수행 중인 정책 및 운영 방향에 대해 설명해 달라.
◇양봉환 중소기업청 기술혁신국장=2011년 산업기밀관리실태조사 결과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12.5%가 기술 유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유출 1건당 피해액은 약 15억8000만원에 달하는 등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중소기업 핵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보호 상담, 기술자료 임치, 기술지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기술보호 상담센터는 기술 유출 사전 예방과 신속한 사후 대응을 위한 분야별 전문 상담서비스를, 기술자료 임치센터는 핵심 기술 유출에 대비하고 거래기업 간 안정적인 기술 사용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자료 임치서비스를 각각 제공하고 있다. 기술지킴센터는 온라인을 통한 중요기술 유출과 사이버 침해 등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보안관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 유출 위험에 취약한 중소기업 자생적 기술보호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매뉴얼 제작 보급 등 지원 체계를 확립하겠다. 또 기술보호 진단·컨설팅사업 진단, 기술임치 대상물 확대 등 기술보호 지원사업을 확대하겠다.
◇사회=중소기업 입장에서 기술임치제도의 장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반용음 인피니트헬스케어 사장=기술임치제도는 편의성 측면에서 상당히 좋다. 특허처럼 요건이 까다롭지 않고, 향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편리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기술보호는 사실상 안 된다고 보면 된다. 대기업이 가장 많이 가져가는 게 소프트웨어다. 어차피 소프트웨어 기술은 어떤 식으로든 유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술임치제도는 소프트웨어 업체에 상당히 유용한 제도다.
하드웨어처럼 외관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임치제도를 활용하면 도용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문 인력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임치제도를 이용해 보호함으로써 불안 요소를 경감시킬 수 있다. 소송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 빠른 분쟁 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인피니트헬스케어는 지식기반 산업으로 전문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산업군에 비해 높다. 인력이 퇴사하거나 다른 경쟁 업체로 스카우트되면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술이 유출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보안 시스템 강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불안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제도를 활용해 제품 사용 고객에게 신뢰성을 제공하고, 내부 직원에게 기술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음을 고지해 기술 유출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또 해외 기업과 거래 시 제품 공급 및 유지 보수를 보증하고 있다.
◇사회=대기업 입장에서 기술 임치제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기업 중에서는 SK가 가장 활발하게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유는 무엇이고, 실제 활용 사례가 있다면 말해 달라.
◇안승윤 SK텔레콤 전무=기술임치제도는 중소기업 협력사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기술 유출이나 기술 멸실 발생 시 사후적인 구제 효과가 크다. 특히 협력 기업에 이러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기술 보호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임치 기술에 대한 기술 유출을 방지하는 등 사전 예방 효과도 크다. 해당 기술에 대한 주인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기술을 유출하거나 함부로 가져가지 않는 등 사전 예방 코드가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도 협력사와 장기적인 서비스 협력 관계 구축이 필요한데 이 제도가 상당히 유용하고,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협력사를 대상으로 기술임치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윈윈이 되는 제도라 생각해 적극 알렸고, 기술 임치 비용도 댔다.
우리 회사는 장비를 납품하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거래 관계에 있는 협력사 상당수가 벤처형 중소기업이라 개발자 이직률이 높아 사업 중단 위험성도 높다.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활용하면 장기적인 서비스 제공 및 유지 보수가 가능해져 안정적인 협력 체계 구축에 도움이 된다. 올해도 신규로 가입을 계속 추진하고 있고, 만기가 돌아오는 기술도 계속 임치하려 한다.
◇사회=기술임치제가 확산되고 있지만, 기술 보호 문제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기술보호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활용 방안은 무엇인지 말해 달라.
◇박종배 드림월드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기술 분쟁 시대에 대비해서 기술보호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기술임치제도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근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해당 제도에 대한 인지도가 저조해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임치 절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기술자료 원본 제출에 대한 부담이 큰 것 같다.
제도의 장점을 집중 분석해서 홍보하면 저변이 많이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치 절차를 좀 더 강화해 임치 제도 이용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기술보호라는 목적에 치중하다 보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취지가 다소 변질되지 않을까 일부 우려된다. 특히 기업이 기술 유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핵심 기술 임치에 따른 차별화된 대안이나 혜택 등이 마련돼야 한다. 제도 이용 기업에 대한 가점 적용 등 다양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사회=기술임치제도가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안전장치로 부각되고 있다. 제도 역할과 발전 방향에 대해 말해 달라.
◇정영태=이 제도는 자기 회사 권리, 영업을 보호할 수 있는 보험 성격이다. 그런데 중소벤처기업이 잘 모른다. 보험을 넣는 적금식 안전장치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거래 중소기업에 문제가 생기거나 부품이나 제품을 공급하지 못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제도는 동반성장 핵심 협력 사업으로 크게 부각될 것이다. 이제 세계는 전문 기술을 보유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기술보호와 임치제도는 쌍두마차, 양 날개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될 것이다. 제도가 확산되면 현재 제조업 위주에서 전 업종, 바이오 에너지 지식서비스 분야로 영역이 넓혀질 것이다. 임치 대상 물건도 기술 관련 설계 도면이나 핵심 도면만 생각하는데 기술임치 대상은 원 소스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창안 내용, 영업상 모든 비밀이 모두 해당된다. 기술임치제 활용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기술보호를 위해 핵심 인력 유출 제한, 교육 및 컨설팅, 권리 귀속, 보안 시스템 제공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프로그램에 확대·반영해야 한다. 또 협력 중소기업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기술보호 지원 프로그램 수혜를 받은 협력 중소기업을 평가해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앞으로 기술임치가 동반성장뿐만 아니라 선진국가로 가면서 서로 믿고 상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장대교 중소기업청 공정혁신과장=작년에 대기업들과 기술보호 선포식을 가졌다. 이제는 대기업들도 기술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고 한다. 앞으로 많은 기업이 이 제도를 더 많이 이용했으면 한다. 브랜드 제고 차원에서 대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 좋겠다.
◇사회=국가 R&D 수행 과제에 대한 기술 보호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양봉환=2011년도 중기청 R&D 완료 성과물에 대한 기술 임치 이용이 의무화됨에 따라 올해 완료 과제부터 기술임치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2206건 중 1523건에 대해 임치를 완료했다. 내년부터는 중기청 R&D 과제 신청 시 사업계획서에 R&D 성과물 보호 계획을 포함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기술 보호 수준에 대한 현장 확인을 거쳐 대면 평가를 실시하고, 과제 선정 후 개발 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 방지 위해 기술지킴 서비스를 의무화할 예정이다. 임치 비용도 R&D 사업비에서 지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
◇사회=기술임치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점과 각계 제언 한 마디씩 해 달라.
◇안승윤=기술임치제도가 정착되고 있으나, 일부 중소기업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도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대기업도 솔선해 내부 임·직원 및 협력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관련 제도 및 교육을 통해 기술 보호 중요성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또 중소기업이 좀 더 쉽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등 장기적인 R&D 투자 및 지속 가능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대기업에서 견인차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에 바랄 것도 있다. 현재 기술 임치 계약기간은 1년인데, 이를 협력기업 계약기간과 연동해 2년이나 3년 등 탄력적으로 운영해줬으면 한다.
◇반용음=제품 및 서비스 납품 과정에서 기술임치 활용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인력 관리 측면에서도 기술 임치를 통해 기술 유출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수단으로 이용돼야 한다. 또 기술임치제를 보호라는 테두리에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인정받아 투자유치에 성공한 때에 해당 기술에 담보 성격을 부여하는 의미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박종배=특허청, 국가정보원 등 유관기관과 협조 체계가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기술임치제만의 차별화된 점을 집중 홍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제도 근본 취지에 부합한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에 중점을 둔 정부 차원의 발전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보호돼야 할 핵심 가치 기술 임치에 대비한 보다 차별화된 혜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변리사 사무실에도 많이 알렸으면 한다. 특허 받은 것도 임치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양봉환=기술임치제도를 이용한 중소기업이 실질적 보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현행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외에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 등 관련 법규에 기술보호 지원사업 추진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 기술유출 및 탈취로 인해 피해를 본 중소기업은 소송을 통한 법적 구제가 어렵다는 특수성을 감안해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인 조정·중재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기술 유출 분쟁 조정 기구를 운영하는 것도 기술임치제 실효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하다고 본다.
◇정영태=제일 중요한 게 기술임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장단점을 곳곳에 홍보하고, 다양한 계층에 대해 인식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중소협력재단이나 중기청에서 홍보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중소기업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신뢰 사회로 가기 위해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전 산업에서 필요한 제도이나 현재 정보통신, 기계소자, 전기전자 등 이용 수요가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인 지식재산서비스업이나 문화 콘텐츠, 바이오산업계와 소상공인 등은 이 제도가 자신들과 동떨어진 제도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분야도 수요 발굴이 집중돼야 한다. 그 업종에 맞는 임치 사례를 발굴해서 홍보할 필요가 있다.
사회 유관기관과 협조 연장선상에서 금융 대출 시스템이나 정부 조달,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세분화된 제도 틀 속에 이 제도를 삽입하고, 활용할 수 있게끔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제도 초기에 임치 제도를 촉진하고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기업에 대해 기술임치 잘한다는 평가도 해줘야 한다. 가령 금융 대출심사 시 기술임치한 기업에 대해서는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창업 초기나 성숙된 기업이 기술을 가지고 나왔을 때 임치 수수료를 차등화하는 한편 다양한 수수료율 제도도 만들었으면 한다.
서울=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