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우리는 슈퍼컴퓨터 강국이 될 수 없는 걸까

Photo Image

미국의 유명 퀴즈쇼 `제퍼디`. 상금이 걸린 문제를 놓고 세 명이 실력을 겨룬다. 지난해 2월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졌다. 출연자는 74연승 대기록을 세운 켄 제닝스, 누적 상금 325만달러의 경이적 기록을 가진 브래드 루터, 퀴즈쇼에 처음 나온 왓슨이다. 총 3라운드 대결에서 승자는 100만달러 상금을 거머쥔다.

1라운드 승부는 백중세였다. 날짜를 달리해 2라운드와 3라운드 대회가 열렸다. 기대와 달리 승부는 싱거웠다. 최종 승자는 풋내기 왓슨이었다. 퀴즈 달인들을 압도한 왓슨은 그 후 시티은행에 취직했다. 왓슨은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다.

슈퍼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은 늘 화제였다. 때는 1997년 5월, 장소는 미국 뉴욕 에퀴터블센터, 대결 종목은 체스다. 12년 연속 세계 챔피언인 체스 천재 게리 카스파로프와 왕년 미국 챔피언 조엘 벤저민에게 체스 과외를 받은 IBM 딥블루가 맞붙었다. 5차전까지 1승 1패 3무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마지막 6차전에서 경기 시작 한 시간 만에 인간 대표 카스파로프는 백기를 들었다. 열아홉 수 만이다. 딥블루는 인간을 이긴 최초의 슈퍼컴퓨터로 회자된다.

이젠 인간과 기계의 체스 대결이 벌어지지 않는다. 흥행거리도 안 된다.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한 지 오래다. 지난주 세계 슈퍼컴퓨터 1위에 오른 미국의 타이탄은 연산속도가 17.59페타플롭스다. 1초에 약 1경7590조회의 연산이 가능하다. 67억명이 쉬지 않고 345년간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일을 단 한 시간에 처리한다. 인간을 처음 이긴 딥블루의 속도가 11.38기가플롭스(1초당 113억8000만회)였으니 그 사이 천지가 개벽했다.

우리는 중국이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톈허1A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속도는 2.507페타플롭스다. 시간을 거슬러 IBM 딥블루 개발 지휘자가 왓슨연구소의 중국인 연구원 쉬펑슝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인과관계는 충분하다. 중국은 국가슈퍼컴퓨터센터를 두고 세계 최고의 기틀을 다졌다.

미국을 제치며 장기간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자존심을 세웠던 일본은 중국의 약진에 절치부심했다. 최악의 경제난에도 1120억엔(약 1조5000억원)을 슈퍼컴퓨터 개발에 쏟아부었다. 일본은 지난해 1경회 연산능력을 가진 케이(京) 개발해냈고 1위를 탈환했다.

속도 경쟁에서 휴식의 결과는 패배다. 케이는 올해 세계 3위로 밀려났다. 일본 과학계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포스트 교토 전략과 내년 여름 발표할 과학기술 미래전략 중간보고서에 선두 탈환 전략을 담겠다며 칼날을 벼린다. 세계 정상의 쾌감을 맛본 중국도 2015년까지 지금보다 5배 빠른 100페타플롭스 속도의 톈허2를 만들겠다고 벼른다.

슈퍼컴퓨터 개발 능력이나 보유 현황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력을 측정하는 잣대다. 슈퍼컴퓨터 활용 능력은 산업 발전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정보통신기술 강국임을 자부하는 우리지만 주변국 행보를 고려하면 가야 할 길은 너무나도 멀다. 또 다른 고급 과학기술인 위성발사체 개발이 더딘 것은 한미 미사일 지침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슈퍼컴퓨터 분야의 부진을 설명할 합당한 이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서울대 이재진 교수팀이 슈퍼컴퓨터 `천둥`으로 278위에 오르며 첫발을 내디뎠다. 급성장했지만 선두권과의 격차는 아직 엄청나다. 그 발걸음을 재촉하고 보폭을 넓히게 하는 방법은 정부의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을 창대하게 할 수 있는 묘책을 더 늦기 전에 찾아내야만 한다. 3년 후 중국과 일본을 시샘하며 신세 한탄하지 않으려면 박차에 또 박차를 가하는 수밖에 없다.


최정훈 성장총괄부국장 jhchoi@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