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역사(로버트 P. 크리스 지음)에서는 `표준은 곧 권력이다`라고 정의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제일 처음 한 일은 `도량형을 통일`하는 칙령 반포다. 표준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치·사회적 권력, 즉 왕의 권위와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표준은 보다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제품표준이나 공정표준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향상시켰다. 표준으로 인류는 보다 풍요로워진 셈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61년 `공업표준화법` 제정 후 표준은 생산성 향상과 품질 혁신에 기여해왔다. 표준이 가져다준 품질 향상이 수출 확대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2011년은 산업표준화가 시작된지 50년이 됨과 동시에 우리나라가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1조달러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오늘날 표준은 보다 넓은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제품·공정·서비스 표준에서 벗어나 안전, 보안, 금융, 사회시스템 등 전 산업 분야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생산성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는 표준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표준으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지금도 표준은 여전히 권력이다. 세계 무역량의 80%는 국제표준의 영향을 받고 있다. WTO는 각 국이 표준과 인증을 도입할 때 국제표준을 의무적으로 채택하도록 하고 있다. 각 국의 표준이나 인증이 무역장벽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재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두고 이른바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동시에 금융위기와 환경오염 등 공동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결국은 한정된 자원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활을 걸고 경쟁하면서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앞에 놓인 난제를 두고 2012년 세계표준의 날 메시지는 하나의 시사점을 제시한다.
`낭비는 적게, 성과는 크게-표준은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옳은 말이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고 더 나은 성과를 창출하는 것, 고대부터 지속되어 온 표준의 역할이다.
표준을 이용해 제품을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즉, 최소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 표준에서 확보되는 상호 운용성과 호환성은 신제품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소비자의 욕구도 충족시킨다. 소비자는 표준화된 제품 표기를 활용할 수 있으며, 표준으로 확보된 안전한 제품을 믿고 사용할 수 있다. 규제기관은 시장과 소비자 친화적인 규제의 근거로 국제표준을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표준에 내포된 최첨단 기술의 노하우는 모든 사람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개별 기업이나 국가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표준은 자원의 낭비를 줄이면서도 인류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더 지속가능한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선진화된 국가표준체계를 확립하고 표준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표준코디네이터(스마트그리드, 스마트물류, 스마트의료정보, 스마트미디어, 3D산업, 클라우드컴퓨팅, 인쇄전자 7개 분야) 제도가 있다. 표준화에 전문성을 확보하고 국책 R&D 과제로 개발된 기술의 국제표준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 기술의 국제표준 선점으로 표준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표준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위기로 우리 수출이 감소하고, 경제성장도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현재의 경제위기 앞에서 표준이 제시하는 새로운 기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비록 국제표준화 후발주자였지만 현재는 IT 등 신기술 개발에 힘입어 국제표준 제정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 성장 원동력은 자원이 아닌 기술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표준 선점이야말로 미래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표준으로 2조달러 무역대국이 되는 대한민국,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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