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한국 진출은 1980년대 본격화됐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봇물을 이뤘다. 이미 1967년 국내 법인을 설립한 IBM과 1974년 후지쯔를 시작으로 하니웰, HP, 히타치, 모토로라,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오라클 등이 연이어 한국에 진출했다.
![[100대 사건_021] 글로벌 IT기업 속속 한국 상륙 <1988년>](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1/316199_20120911175407_721_T0001_55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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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이후 PC가 보급되고 전자산업 저변이 확대되면서 국내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강화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이들 IT기업은 초기 한국IBM과 마찬가지로 금융을 포함한 여러 산업군에 IT와 제품을 공급했다. 이뿐만 아니라 선진 업무 프로세스 도입, IT 인력 양성을 바탕으로 국내 산업화·정보화에 크게 기여했다.
◇선발대는 한국IBM·한국후지쯔=1980년대 많은 글로벌 IT기업이 한국에 진출했지만 그 원조는 역시 IBM이다. 1967년 법인을 설립한 한국IBM은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국내 최초 컴퓨터(최초 컴퓨터는 한국IBM과 한국후지쯔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음)인 IBM 시스템 1401을 공급했다. 이후 45년간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정보화를 뒷받침함으로써 IT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한국IBM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장애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도 힘을 보탰다. 올림픽 당시 하드웨어(HW), 소프트웨어(SW), 유지보수 등 100억원 상당 시스템과 220여명의 인력을 지원했다.
1982년 수출구매사무소를 설립한 한국IBM은 국내 기업으로부터 다양한 컴퓨터 부품 및 완제품을 해외 IBM 공장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출 규모가 수입을 추월하면서 우리나라 무역수지 개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금도 IBM은 국내 기업들로부터 반도체, 케이블, 인쇄회로기판 등 다양한 부품을 구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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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쯔가 국내에 법인을 설립한 것은 1974년이지만 이미 1967년부터 국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한국생산성본부는 1964년부터 컴퓨터 도입을 위해 IBM과 교섭을 추진했다. 하지만 거의 공짜로 빌려달라는 제의에 협상이 결렬되자 교섭 대상을 후지쯔로 변경했다. 결국 후지쯔와 60만달러에 해당하는 파콤222 임대계약을 성사시켰다.
1967년 3월 인천항에 도착한 파콤222는 그해 5월 5대의 대형 트럭에 나뉘어 경찰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한국생산성본부에 도착했다. 파콤222는 국내 컴퓨터 사업 저변 확대에 기여했고 한국후지쯔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법인 설립 후 한국후지쯔는 국내 최초 베이직 SW와 한국어처리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SW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노하우를 국내에 전수했다.
◇올림픽 전후 MS·TI·인텔 진출=1980년대 이전 IBM과 후지쯔가 국내 진출에 앞장섰다면 1980년대 들어 가장 먼저 한국시장의 문을 두드린 곳은 HP다. HP는 1977년 삼성전자 HP사업부로 HP 제품 대리점 사업을 시작했다. 1984년 휴렛팩커드와 삼성전자의 합작으로 설립된 삼성HP(현 한국HP)는 1998년 HP가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인수하기까지 삼성전자와 협력해 기업용 시스템과 프린터 개발·보급에 주력했다.
1985년에는 효성과 내셔널어드밴스시스템(나스)이 합작해 효성나스를 설립했다. 효성나스는 1990년 나스를 히타치가 인수하면서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으로 사명을 바꿨다.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은 디스크와 테이프 등 기업용 저장장치를 전문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국내 스토리지 전문기업의 시초 기업이다. 20여년간 히타치 선진 스토리지 기술을 국내에 전파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P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외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점차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1988년을 전후로 정점에 달했다. 디스크,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의 부품과 프린터 수요가 늘면서 한국에서 직접 영업을 하는 게 목적이었다.
1998년 1월 한국에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MS)는 국내 PC산업 활성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MS는 이미 1984년부터 국내 협력업체를 통해 제품을 보급했다. 1985년 MS-DOS 2.11 공급을 시작으로 1990년 윈도3.0과 엑셀2.1 한글 버전을 출시하며 PC 확산을 주도했다.
한국MS가 1995년 출시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기반 운용체계(OS) 한글 윈도95는 국내 PC와 IT산업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MS는 단순한 제품 공급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과 전략 제휴를 맺고 국내 산업 발전의 동반자 역할을 했다.
MS에 이어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가 1988년 5월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반도체 회사는 법인 설립 이후 국내 전자제품에 적합한 아날로그 반도체와 마이크로컨트롤러를 공급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코리아를 거친 인력들은 현재까지도 국내 휴대폰, 자동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같은 해 설립된 인텔코리아는 국내 PC 제조사들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하고 기술을 지원했다. 플래시 메모리와 임베디드 프로세서도 공급했다. PC뿐만 아니라 x86서버 등 시스템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기업용 전산시스템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이처럼 1960년대에 시작된 글로벌 업체의 한국 진출은 88 서울올림픽 전후로 붐을 이뤘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선 통신과 네트워크, 센서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PC 외에 다양한 산업분야 업체들이 국내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오라클과 SAP 등 글로벌 SW업체들이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 홍성원 전 청와대 과학비서관
“1980년대 국내 IT 수준은 매우 낮았습니다. 국가에서 추진하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주로 중화학공업에 치중돼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진출한 해외 IT기업들은 단순한 기술력뿐만 아니라 세일즈, 선진관리기법 등 여러 면에서 국내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0년대 청와대 과학비서관을 지낸 홍성원 박사는 1980년대 국내 IT산업을 이렇게 회고했다. 중화학공업 일변도 정책과 방위산업 목적이었던 기계공업, 80% 이상을 가전에만 치중했던 전자산업 등이 당시 국내 IT산업의 상황이었다.
홍 박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 초 상공부 전자공업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자산업 육성 태스크포스(TF)를 조직했다”며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전자공업진흥책`을 내놓았는데 핵심은 `컬러TV`의 확산이었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재임기간 내내 컬러TV 방영을 금지했다.
하지만 반도체 등 부품산업과 전자산업을 살리는 데는 컬러TV의 확산이 필수였다.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을 컬러TV로 방영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자산업 발전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얼마 가지 않아 컬러TV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면서 반도체를 비롯해 관련 부품 산업도 덩달아 발전했다.
국내 수요가 늘자 글로벌 업체들이 앞다퉈 한국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전자물품 제조를 위한 공장이 늘어나자 공장 자동화 관련 업체들도 국내 법인을 설립했다. 1984년 럭키금성과 미국 하니웰이 합작으로 설립한 금성하니웰(현 한국하니웰)이 대표적이다. 금성하니웰은 공장제어와 자동화 시스템 등을 국내에 공급했다.
컬러TV가 전자산업 활성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면 PC는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기폭제로 해외 IT기업의 국내 진출을 더욱 부채질했다. 1980년대 초 IBM PC가 출시된 이후 국내 업체들도 앞 다퉈 PC 제작에 착수했다. 삼보컴퓨터를 필두로 삼성전자, 럭키금성, 효성 등이 PC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부터 PC 수요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가 출현하고 정부의 지속적인 확산 정책과 개발로 PC가 점차 정보화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교육을 위해 각 군부대에도 PC가 보급됐다. 비교적 경제력이 있는 일반 가정을 중심으로 구매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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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PC 경진대회에는 수천명이 모일 정도로 PC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85년 청와대에서는 각종 보고서의 수기 문화가 사라졌다. PC를 기반으로 한 공공·기업 정보화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PC 확산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오라클 등이 한국에 진출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홍 박사는 “결국 글로벌 IT기업의 한국 진출은 별도의 유치 노력이 있었다기보다 국내 전자산업 성장에 따른 자발적인 진출이었다”며 “이들 기업은 금융과 제조, 공공 등 사회 각 분야 정보화를 한 단계 앞당기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표] 주요 글로벌 기업 한국법인 설립연도
(자료: 전자신문)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