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26일, SBS가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디지털 본방송을 개시하면서 우리나라는 `꿈의 디지털방송 시대`에 진입했다.
SBS는 2000년 8월 시험방송을 시작하며 디지털방송을 준비한 끝에 마침내 국내 최초 디지털 본방송에 들어갔다. SBS는 이날 오전 11시 여의도 본사에서 윤세영 SBS 회장, 최재승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김정기 방송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열고 `특별 생방송 HDTV 시대 SBS가 연다`를 방송했다.
![[100대 사건_059] 디지털방송 시대 개막 <2001년 10월>](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1/316455_20120911175641_735_T0001_55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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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방송이 시작되면서 시청자는 뛰어난 화질과 화려한 디지털음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상파에 이어 위성방송과 케이블까지 디지털화되면 100여개의 다채널 서비스도 가능해지며, 데이터방송, 양방향방송, 유료채널 등 아날로그방송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서비스도 할 수 있다.
SBS가 가장 먼저 본방송을 시작한 것은 후발 방송사로서 입지 강화를 위한 방편이었다. SBS는 후발 방송사와 수도권에 한정된 민영방송이라는 약점을 디지털방송을 통해 극복한다는 전략에 따라 1999년 별도의 디지털방송팀을 구성해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시험방송도 타사보다 먼저 시작했다.
본방송을 시작할 때 SBS는 HD급 디지털스튜디오 1실을 비롯, 종합편집실 2개, 개인편집실 4개, HD급 ENG카메라 6대, VCR 32대 등을 갖췄다. SBS는 디지털 전환에 330억원을 투자했으며, 향후 5년간 142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방송계는 SBS의 디지털방송을 지켜본 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실험방송과 시험방송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쌓고 문제점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SBS에 이어 KBS 1TV와 EBS는 11월 5일, MBC는 12월 2일, KBS 2TV는 12월 31일 각각 본방송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11월 5일 본방송에 들어가는 KBS는 2000년 말 기준으로 방송시설 10% 정도를 디지털화했다. KBS는 향후 10년간 총 1조7000억원의 비용이 디지털화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화에 소요되는 분야별 예산은 프로그램 제작비 6600억여원, 제작시설 5000억여원, 송신시설 4800억여원, 운용유지비 500억여원으로 책정했다. 제작시설은 고품질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향후 약 8년 동안 연차적으로 시설을 전환할 계획을 세웠다.
MBC는 창사 40주년 기념일인 12월 2일을 디지털TV 본방송 개시일로 정했다. MBC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MBC 본사와 지방사를 합쳐 6237억원의 재원을 투입하는 디지털TV 전환 투자계획을 수립했다. 본방송에 대비해서는 2001년 말까지 MBC 본사 차원에서만 총 573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보통신부는 관악산 송신소를 통해 디지털 본방송을 시작한 후 2002년에는 남산과 용문산 등 수도권 내 주요 중계소 조기 개통을 유도해 시청권역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이어 2003년에는 광역시, 2004년에는 도청소재지, 2005년에는 시·군 등 단계적으로 전국적인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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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지상파 본방송 개시로 각 방송사는 주당 10시간 이상 고선명(HD) 방송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증권·교통·뉴스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데이터방송도 준비했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책을 내놨다. 디지털 전환 초기 방송사별로 막대한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해 외산장비 도입 시 관세를 감면해주는 조치를 도입했고, 디지털방송 수신기 보급을 확산하기 위해 PDP TV 특별소비세도 15%에서 1.5%로 인하했다.
하지만 당시 일부 방송사들은 막대한 디지털 전환 자금 때문에 디지털방송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디지털방송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아 디지털방송 붐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어떻게 디지털방송을 시청하는지조차 몰라 문제가 됐다.
한편 지상파 방송에 이어 위성방송과 케이블TV도 디지털 전환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은 당초 2001년 말 본방송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2002년 3월로 연기했다. 위성방송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형태의 방송 서비스여서 시범방송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셋톱박스 공급일정과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의 준비 부족도 연기한 이유 중 하나였다.
위성방송은 자본금 3000억원 중 상당부분을 셋톱박스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인프라 확산에도 수천억원을 확보해 투자하기로 했다.
케이블TV 디지털 전환은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협의회를 중심으로 디지털미디어센터(DMC)를 공동 설립하고, 여러 SO를 운영하는 지주회사가 계열 SO를 하나로 연계해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또 개별 SO가 셋톱박스 업체, 디지털방송 솔루션 업체 등과 손잡고 독자적인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 곳도 있었다.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PP들도 디지털방송 준비에 나섰고, 복수PP(MPP)를 중심으로 이러한 시도가 더욱 활발했다.
◆ 차양신 정보통신부 방송위성과장(현 한국전파진흥협회 상근부회장)
“아날로그 방송에서는 한국이 뒤졌지만, 디지털방송에서는 앞서가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표준을 제정하고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디지털방송시대를 개막한 2001년 당시 정보통신부 방송위성과장이었던 차양신 한국전파진흥협회 상근부회장은 적극적인 디지털방송 추진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정통부는 1997년 11월에 지상파 디지털방송 추진협의회 건의에 따라 지상파 디지털 TV 전송 표준을 미국 ATSC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후 방송사들의 실험방송과 시험방송을 거쳐 2001년 본방송에 돌입하게 됐다.
차 부회장은 “1997년 디지털TV 전송방식이 결정되고 나서 구체적인 방송 규격 등을 준비했고, SBS의 최초 본방송 개시도 담당했다”고 말했다.
당시 디지털 전환자금이 확보되지 않는 등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정부가 너무 빨리 추진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발 빠른 추진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차 부회장은 “디지털방송은 외국보다 앞서 가면서 기술을 쌓자는 판단이었다”면서 “정부가 주도하면서 디지털방송을 앞당긴 것이 결과적으로 방송, TV, 장비 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방식으로 표준을 정하고 빠른 상용화를 한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TV 제조업체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벌어진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차 부회장은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은 미인대회 선발과 비슷했다”면서 “미인대회 참가자 중 눈이 예쁜 사람, 코가 예쁜 사람 등 장점이 서로 다르지만 결국 종합적으로 보고 선발하는 것처럼 전송방식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방식과 유럽 방식이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면서 “미국 방식의 단점도 알고 있었지만 장점을 보고 고민 끝에 선정했는데 나중에 단점을 문제 삼아 논란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단점을 보완할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차 부회장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누군가 보완 기술을 개발한다”면서 “특히 우리가 상용화하면서 주도적으로 뛰어들어 보완기술을 만들 수 있는 부분도 중요한 판단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방식의 약점으로 지적된 이동수신 문제를 해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는 지상파DMB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이동수신 약점을 보완했다.
차 부회장은 정통부 방송위성과장, 정보보호기획과장을 거쳤고, 정통부 후신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용자보호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났다. 연세대 교수를 거쳐 지난해 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에 선임됐다. 현재 협회에서 디지털 전환 작업을 중점 추진하면서 디지털방송 시대 개막부터 마무리까지를 책임지고 있다.
[표] 디지털방송 관련 일지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