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71] 세계 표준에 도전한 DMB와 와이브로 <2005년 5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과 와이브로(Wibro:Wireless Broadband Internet)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누구보다 앞서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 표준을 획득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세계적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가졌던 기술이기도 하다. 마지막 공통점은 상용화 수년 만에 사업을 접었거나 접을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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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자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왼쪽 네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05년 12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지상파DMB 공동 개국 기념행사`를 갖고 일제히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기술은 앞설 수 있었지만 시장을 형성하고 이용자에 뿌리내리는 것은 또 다른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한 대표적 사례가 됐다.

◇DMB, 절반의 성공인가=DMB는 디지털 방송기술을 이용해 이동 중에 TV, 동영상, 라디오, 문자방송 수신이 가능한 서비스다. 아날로그 라디오를 대체하기 위해 유럽에서 만든 디지털 오디오 방송 DAB를 바탕에 두고 있다. 기존 아날로그 라디오는 정지 상태 수신을 위해 개발돼 이동 중에는 음질이 떨어지고 더 많은 주파수 대역이 필요했다. 반면에 DAB는 이동 중에도 고품질 음성과 데이터, 이미지 등 부가 정보 제공이 가능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동영상 서비스에 적용한 DMB를 만들어냈다.

200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주축으로 산학연 공동 연구에 착수했고, 2004년 9월 삼성전자가 PDA 형태의 지상파DMB 수신기를, 11월에는 LG전자가 지상파DMB폰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2005년 3월 KBS, MBC, SBS 기존 지상파 3개사와 YTN DMB, 한국DMB, KMMB 3개 신규사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2005년 12월 1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방송을 개시하며 세계 최초로 지상파DMB 시험방송을 실시한 후 이듬해 1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앞서 2005년 5월에는 SK텔레콤 자회사인 티유미디어가 위성DMB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SK텔레콤과 일본 MBCo는 DMB용 위성 `한별(공식명칭 MBSat)`을 2004년 3월 13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한별은 이날 오후 로켓 `아틀라스 3A`에 탑재돼 지상 3만5785㎞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우리나라 지상파DMB 기술은 2004년 12월 월드 디지털오디오방송(DAB)포럼 기술위원회에서 표준으로 채택됐다. 앞서 11월에는 유엔전문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지상파DMB 규격을 국제전기통신연합 전파통신 부문 보고서로 승인했고, 2007년 국제표준 권고안으로 최종 채택됐다. 우리 기술의 국제 표준 채택은 지상파DMB의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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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0일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 휴대폰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다양한 모델의 지상파 DMB폰을 살펴보며 성능을 비교하고 있다.

지상파DMB는 무료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으나 나중에는 이점이 오히려 독이 됐다. 광고가 유일한 수익원이라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광고 수익만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상파DMB 사업자들은 유료 서비스 개발로 눈을 돌려 수익 모델을 창출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상파DMB는 현재 6개 사업자가 총 11개의 비디오 채널과 30여개 오디오 채널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시청자 수는 3500만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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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B 수신경로 자료:한국방송광고공사

DMB의 최대 관건은 수익성 확보다. 지난 2009년 지상파DMB는 54억원의 적자를 냈으나 2011년에는 약 21억원의 흑자를 냈다. 하지만 이는 수익이 는 것보다는 지출을 줄인 덕분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흑자를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업자들은 적자의 늪에 허덕인다. 콘텐츠 경쟁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상파DMB는 시청이 무료기 때문에 광고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나 화면이 작고 시청 시간이 일반 TV에 비해 짧다는 점 때문에 광고주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상파DMB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티유미디어를 인수한 SK텔링크는 2012년 8월 31일 위성DMB서비스를 중단했다.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쌓인 적자가 원인이었다. 무료서비스인 지상파DMB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정보통신부가 지상파와 위성DMB 가운데 어느 하나만 사업을 허가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또 나왔다.

지상파DMB에도 험난한 미래가 놓여 있다. 이통사 및 케이블 TV 사업자들이 N스크린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CJ헬로비전의 `티빙`이나 현대HCN `에브리온 TV`, MBC SBS 합작사인 콘텐츠연합플랫폼의 `푹` 등이 대표적 N스크린 서비스다. 최근에는 운전 중 시청이 교통사고 주범으로 몰리면서 규제가 강화될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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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APEC정상회담'에 앞서 KT는 2005년 11월 14일 세계 최초로 이동중에도 완벽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와이브로를 선보였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이 남중수 KT 사장(왼쪽)과 홍원표 KT 와이브로사업본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연을 하고 있다.

◇와이브로, 불투명한 향배=와이브로는 유선 초고속인터넷 및 무선랜의 이동성을 보완해 도심에서 1Mbps 이상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이동전화처럼 이동 중에도 끊김없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KT·하나로텔레콤·SK텔레콤·KTF 등이 참여해 2004년 11월 27일 개발에 성공했다. 같은 해 12월 23일, `와이브로 시제품 개발 시연회`에서 국내 및 국제 규격을 적용한 시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시속 20㎞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1Mbps 속도의 인터넷 접속 및 실시간 방송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와이브로 기술은 2005년 12월 전기전자공학회(IEEE)에서 세계 표준으로 최종 승인됐다. 3세대 이후 이동통신 기술 주도권을 놓고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쾌거였다. 와이브로가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IT 분야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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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3일 APEC 공식일정이 시작된 가운데, 부산 벡스코 국제미디어센터를 찾은 행사관계자들이 KT의 와이브로(WiBro·휴대인터넷) 라운지에서 휴대형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고속 접속으로 다양한 정보 및 콘텐츠 사용이 가능한 와이브로 서비스 이용 방법을 설명 듣고 있다.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와이브로를 활용한 유비쿼터스 세상을 선보여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APEC 21개국 정상과 수행원, 언론인 등 6500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와이브로를 이용해 이동 중에도 인터넷 접속과 다자 간 영상회의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후 와이브로 관련 장비를 해외 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인증을 국내에서 바로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관련 장비와 단말기 제조업체의 해외 시장 진출이 한층 탄력을 받았다.

2006년 3월부터 KT는 서울 일부지역과 지하철 일부 노선을 중심으로 시범서비스를 개시했고 5월에는 SK텔레콤이 서울 대학가를 대상으로 시험서비스를 실시했다. 시험서비스는 유무선연동형 게임과 주문형 비디오(VoD), 메신저 채팅, 개인 방송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 중심으로 제공됐다. 이어 2006년 6월 KT와 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를 통해 와이브로 상용서비스가 시작됨으로써 본격적인 와이브로 시대가 열렸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이후 10년 만에 또다시 세계 최초 와이브로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선보인 와이브로의 성적표는 예상에 크게 못 미친다. 2012년 8월 현재 와이브로는 국토 면적의 90%를 커버하지만 가입자는 KT 88만여명, SK텔레콤 6만여명에 머물고 있다.

기술 개발 초기인 2003년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11년까지 와이브로 국내 가입자 950만명, 매출액 3조원 규모를 예상했다.

KT는 2011년 와이브로 사업으로 2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고, 2018년까지 누적적자는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와이브로가 부진한 이유는 LTE, 3세대(G) 무제한 요금제, 촘촘한 와이파이 망 등 대체재가 등장해서다.

글로벌 와이브로 사업자들도 시장정체와 수익악화 등 국내 사업자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클리어와이어, 인도 바티, 러시아 요타, 말레이시아 P1 등 많은 사업자들이 와이브로 투자를 중단하고 LTE로 전환할 계획이다. 시장성이 없자 와이브로 장비 및 단말기 제조사들도 신규 제품 개발에 소극적이다. 지금까지 휴대폰에 와이브로가 적용된 모델은 단 한 종에 불과하다.

최근 공식석상에서 한 통신 업체가 와이브로 사업을 포기할 뜻을 내비치자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등 와이브로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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