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체신부는 통신사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통신공사의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 이외에 제2 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해 이통 분야에 경쟁을 도입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통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돼 당시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1991년 8월 14일 체신부 장관 명의로 제2 이통사업자 선정에 관한 주요 기준이 발표됐다.
체신부가 발표한 제2 이통사업자 선정 기준의 핵심은 단일 기업이 단독 지배할 수 없도록 컨소시엄을 구성하되, 그 중 지배 주주는 해당 주식의 33%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기준은 삼성과 현대, 대우, 럭키금성 등 통신기기 제조업체는 대주주에서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연구개발 부담 능력과 국산화 노력도 주요 평가기준으로 제시했다.
사업자 선정은 1992년 8월로 예고됐다.
◇재계, 제2 이통사업 레이스…선경, 압도적 차이로 1위=선경을 비롯한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6개 그룹이 사업자 선정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제2 이통 사업권 획득은 재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최대 경제이슈로 부각된 가운데 이들 6개 그룹은 440개사에 달하는 국내 업체 및 외국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1992년 6월 26일 체신부는 제2 이통 사업신청서 접수를 마감, 6개 그룹 컨소시엄이 제출한 서류를 정밀 심사했다. 7월 29일 체신부는 1차로 선경과 포항제철, 코오롱 3개 그룹 컨소시엄을 제2 이통 사업자 후보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평가항목별 집계에 따르면 선경의 대한텔레콤은 총점 8127점을 얻어 1위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코오롱의 제2 이동통신은 7783점, 포항제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은 7711점으로 선경의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이들 3개 그룹이 2차 심사·평가 대상으로 선정된 가운데 최종 선정을 위한 심사 작업에 들어갔다.
선경은 1차 심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함에 따라 최종 선정될 것이라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선경은 이에 앞서 1980년대 중반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한 만큼 경쟁 기업에 비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철저한 준비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2 이동통신 사업신청서를 제출하기 이전인 1992년 1월,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1992년을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원년으로 선언하는 등 정보통신산업 진출에 대한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1992년 선경그룹 신년사에 따르면 최 회장은 “기존업체와의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국가 산업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또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서의 성장 가능성도 고려했습니다. 이런 분야들 중 나는 정보통신사업을 다음 사업영역으로 선정하여 그룹의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중략) 우리가 진출하고자 하는 이러한 정보통신사업은 SKMS와 SUPEX를 추구하는 선경으로서는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영역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며 강력한 실행의지와 자신감를 피력했다.
◇선경, 2차 평가도 1위…미묘한 여론=제2 이통사업자 선정은 제6 공화국 최대 이권사업으로 부각되었던 만큼 노태우 대통령 정권 말기 정치권의 미묘한 역학 관계에 휘말려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런 가운데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 관계인 선경이 1등을 차지하자 야당에서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체신부가 “심사 과정이 공정했다”며 의혹을 일축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국민의 관심이 증폭되자 사업자 선정을 다음 정권으로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었지만 정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국가적인 사업 추진을 중단하는 것은 공신력을 잃은 처사`라며 2차 심사발표를 강행했다.
1992년 8월 20일 발표된 2차 심사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선경이 압도적인 차이로 최고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제2 이통사업 최종 허가법인으로 선정됐다. 제2 이통 2차 평가항목별 종합점수는 대한텔레콤(선경) 8388점, 신세기이동통신(포항제철) 7496점, 제2이동통신(코오롱) 7099점 순이었다. 체신부는 세부평가 항목과 항목별 가중치 및 가중치 부여 원칙, 각 업체의 항목별 점수와 신청서 사본, 심사평가위원 명단까지 공개하는 등 심사의 공정성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선경의 백기투항=그러나 제2 이통사업자 선정 발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묘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커다란 물의를 불러일으켰다. 현직 대통령 인척기업에 허가한 불공정한 처사라는 국민적 여론과 제6 공화국 말기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것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분란이 일었다. 차기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 대표는 특혜 의혹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과 청와대는 완강했다.
하지만 선경이 `대통령 사돈 기업`이라는 이유로 특혜 의혹은 지속됐고, 여론의 향배도 심상치 않았다. 선경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1992년 8월 27일 선경그룹은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합법적인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되었으나 물의가 커 국민 총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며 제2 이통사업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이어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제2 이통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다음 날인 8월 28일 체신부도 제2 이통사업자 선정 문제를 차기 정권으로 이양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2 이통사업자 선정이 불과 1주일 만에 백지화됐다.
그 뒤 정부는 제2 이통사업자 선정을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넘겨 1994년 2월 신세기이동통신을 새 사업자로 선정하게 된다.
[표] 제2 이동통신 컨소시엄 현황
◆외압으로 드러난 제2 이통 사업권 반납
지난 1992년 선경의 제2 이통 사업권 반납 사태는 정부의 압력 행사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는 지난해 6월 1992년 8월 27일 청와대가 `이동전화 사업에 관한 권고`라는 제목으로 선경그룹에 보낸 공문을 확보, 단독으로 보도했다.
본지는 정부가 제2 이통 사업권을 따낸 대한텔레콤의 대주주인 유공이 사업권을 자진 포기하도록 유도, 정경유착 특혜논란 사태를 수습하는 데 협조할 것을 요구한 것을 확인했다.
청와대는 공문에 “정부는 국내의 이동전화 이용 편의를 중진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적법한 절차와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귀사를 제2 이동통신사업의 신규허가 법인대상으로 확정, 통보하였으나 귀사의 대주주인 유공이 대통령과의 특수관계임을 이유로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이 크게 이의를 제기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정치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고 적시했다.
이어 “그러나 국론을 조속히 통일하고 정치사회의 안정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에 함께 매진하기 위하여 대한텔레콤의 대주주인 유공이 자기 책임 하에 구성주주를 설득, 사업권을 자진포기하여 현재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는 데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고 양해를 요구했다.
당시 대한텔레콤이 자진반납 방침을 밝힌 것과 달리 정부가 정치권의 외압을 받아 민간기업의 사업권 반납을 강요한 것이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청와대는 선경에 제2 이통 사업권 자진반납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정치적 해법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당, 정부는 대한텔레콤의 자진반납이라는 해법을 찾기 위해 막후에서 긴박하게 움직인 정황 외에 체신부가 선경의 제2 이통 사업권 자진반납에 강력하게 반대한 정황도 드러났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