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25] 선도기술개발사업(G7 프로젝트) 발표 <1991년 5월>

1990년대 들어 소련이 붕괴되면서 동서 냉전체제가 종식됐다. 이로 인해 정치와 이념, 군사력에 집중하던 세계 판세가 경제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과학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졌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선도역할을 수행할 전략기술 분야를 선정, 육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100대 사건_025] 선도기술개발사업(G7 프로젝트) 발표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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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2001년까지 선진 7개국(G7) 수준 진입을 목표로 과학기술투자를 국민총생산의 5% 수준인 398억달러(약 56조원), 연구개발 인력 15만명(인구 만명당 30명) 확보를 약속하는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당시 선진국들은 자국 보유기술 보호와 신기술 선개발 등을 바탕으로 후발국의 기술추격을 근원적으로 봉쇄하려는 움직임을 표면화하고 있었다. 기술독점을 위해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력히 주장했고, 선진공업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회의에서는 각국의 상이한 기술개발 지원제도가 국가 간 무역마찰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며 규제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면서 선진국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첨단과학기술 분야 정부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추세였다.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의 9.8%, 일본의 12%, 프랑스의 38.1%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해외기술 의존도는 22.3%에 달했다. 기초과학 분야는 세계 38위권으로 처져 있었다.

1990년 초.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2001년까지 선진 7개국(G7) 수준 진입을 목표로 과학기술투자를 국민총생산의 5% 수준인 398억달러(약 56조원), 연구개발 인력 15만명(인구 만명당 30명) 확보를 약속하는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리고 1년여 세월이 흐른 뒤인 1991년 5월 23일, 정부는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G7)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의 `G7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정부예산 1조5710억원과 민간투자 1조9619억원 등 총 3조5329억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었다.

◇선진 과학기술 입국 초석 다진 G7프로젝트=정부는 핵심 원천기반기술을 확보해 경제와 사회발전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지구환경 문제 등 새롭게 전개되는 국제질서에 대한 효과적인 기술적 대응체제를 마련, 과학기술력을 확보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G7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전략기술과제를 선정해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과학기술처는 계획기간에 △최종 연구성과가 분명히 기대되는 국책기술 과제와, 최종 성과는 기대할 수 없으나 △기술축적 없이는 선진대열에 들 수 없는 핵심전략기술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G7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핵심전략기술 분야에는 기술개발 단계별로 각 관련부처와 기관의 연구개발 자금을 연계 투입하기로 했다. 전문가 연석회의와 공청회를 거쳐 후보 과제별 또는 대상기술별로 계획 초안과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검토 대상 과제로 컴퓨터와 반도체 등 정보산업분야(70개)와 기계 및 자동차(26개), 생명공학(23개), 신소재(17개), 정밀화학(14개) 등이 올랐다.

G7프로젝트 추진사업으로는 제품기술 개발과 기반기술 개발 두 분야에서 14개 분야 445개 핵심기술 개발과제가 최종 선정됐다. △초고집적 반도체 분야(17개) △인공지능 컴퓨터(45개) △차세대 수송기계·부품(83개) △HDTV(20개) △광대역 ISDN(10개) △전기자동차(19개) △신의약·신농약(19개) △첨단생산시스템(50개) △정보·전자·에너지첨단소재(72개) △신기능생물소재(11개) △환경공학(25개) △신에너지(33개) △차세대 원자로(23개) △감성공학(18개) 등이었다.

정부는 관계부처와 정부투자기관 및 산학연이 공동 참여하는 범부처적 사업으로 추진하되, 사업별 투자계획은 매 사업 연도 관계부처와 협의해 확정한다는 추진전략을 세웠다. 총괄부처는 차질 없는 사업 수행관리와 투자재원 확보, 연구성과 실용화 지원을 위한 제도와 시책강구 등 사업추진 전반을 책임 관리하고, 협조부처는 투자재원 분담 지원과 소관분야 연구과제 협동 참여 유도 및 관리 등을 담당하기로 했다.

◇산학연 전문가 중심 기획단이 총괄 운영=G7프로젝트 종합조정과 기술동향 분석 등은 각계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G7전문가기획단을 설치해 맡겼다. 기획단에는 심상철 과학기술원 교수와 맹일영 삼성고문(이하 종합부문), 한동철 서울대 교수(기계), 강인구 금성연구소 소장(전자 및 기술개발), 윤창구 과학기술연구원 교수(화공), 한민구 서울대 교수(동자 및 원자력), 박원훈 과학기술연구원 실장(생물해양)이 참여했다.

기획단 산하에는 13개 분야별 연구회의위원을 뒀다. 연구회의위원으로는 △기계 서상기(기계연구소) △항공 안태영(삼성전자) △정보통신 박찬모(포항공대) △반도체 김정덕(전자통신연구소) △전자기술 이주형(삼성전자) △광 강민호(한국통신) △소프트웨어 최병항(쌍용컴퓨터) △신소재 이동녕(서울대) △고분자 여종기(럭키연구소) △정밀화학 김창규(태평양화학연구소) △에너지 안병훈(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 강창순(서울대) △생명공학 김충섭(제일제당연구소) 등을 선임했다.

G7프로젝트 주관 연구기관은 공모로 선정했다. 이미 연구기획이 끝난 HDTV와 특성상 지정할 수밖에 없는 신형원자로를 제외한 12개 분야에서 공모를 실시했다. 과기처가 총괄하는 분야에서는 컴퓨터연구조합(인공지능 컴퓨터), 반도체연구조합(초고집적 반도체), 한국표준과학연구원(감성공학), 서울대 신소재공동연구소(첨단소재), 신의약연구조합(신의약 신농약), 유전공학연구조합(신기능생물소재) 등이 선정됐다. 상공부가 총괄하는 전기자동차와 차세대 수송기계, 첨단생산시스템 분야에서는 자동차부품연구소·서울대·생산기술연구원이 각각 낙점을 받았다. 또 동자부 주관 신에너지와 신형원자로 기술 분야는 한전기술연구원이 주관 연구기관이 됐다. 체신부 주관 광대역종합정보통신망(ISDN)은 한국통신, 환경처 주관 환경공학기술은 국립환경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원이 공동으로 선정됐다.

◇범국가 차원 전략지원체계 가동=과학기술처는 원활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아예 연구개발 행정체계 자체를 전면 개편했다. 연구개발조정실장 직속 종합연구조정관을 신설해 G7프로젝트를 종합 관리하도록 했다. 또 환경복지 분야의 연구기획과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공공연구조정관도 신설했다. 기계연구조정관은 기계재료연구조정관으로 확대 개편해 신소재 개발 등 재료분야 연구기능을 강화했다.

부족한 우수 연구인력 수급을 위해서는 소련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유치했다. 선진국들이 이전을 기피하는 항공우주 분야를 비롯해 정보산업·신소재·신에너지·의료환경 분야에서 200~400명에 이르는 소련 과학기술 인력을 G7프로젝트에 투입했다.

◇과학기술복권 발행으로 1조원 기금 마련=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동안 과학기술복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로써 1조원에 이르는 과학기술진흥기금을 조성했다. 이 기금은 G7프로젝트를 비롯한 핵심기술개발사업 지원과 한국기술개발을 자본금 5000억원의 한국종합기술금융으로 확대 개편해 기업의 기술개발을 위한 금융지원을 강화하는 데 쓰였다.

정부는 이 밖에 △인력개발 및 연구요원에 대한 세액공제율 상향조정 △신기술 기업화사업용 자산에 대한 특별 상각률을 30%에서 50%로 확대 △연구용품 및 원자재 등에 대한 80% 관세 감면제도 신설 △사내 기술대학의 학술연구기자재에 90%의 관세감면 등 기업들의 기술개발에 대한 세제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과학기술혁신종합대책`도 마련했다.

◇적지 않은 성과 불구 결국 실패한 프로젝트로=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1994년 삼성전자의 256메가 D램 세계 최초 개발과 19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성공, 2001년 세계 최초 40인치 TFT LCD 개발 등 다양한 결과물을 쏟아냈다. 이 밖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3세대 플러스형 신형경수로를 수출하는 등 국내 연구개발(R&D)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G7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로 분류된다. 종료 후 실용화되지 않거나 착수 후 사업규모가 점점 축소돼 사라진 사업이 나타나는 등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기술부는 연구과제 수행 종합분석팀을 구성해 △HDTV 수상기 공동개발사업과 △차세대반도체 기반기술사업 △신의약·신농약 개발사업 등을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분석하기도 했다. 실패한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다. 수조원을 들여 얻은 실패 경험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표] G7프로젝트 추진사업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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