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비사]<107>TDX서약서

TDX―TDX 서약서

1982년 3월 15일 체신부 회의실.

최광수 장관(대통령 비서실장, 외무부 장관 역임) 주재로 전자교환기 개발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우재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체신부 장관 역임)과 최순달 전자통신연구소장(체신부 장관 역임)을 비롯한 해당 기관의 책임자가 모두 참석해 전자교환기 개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방향을 논의했다.

최순달 소장은 “연구소 입장에서는 현재 개발한 전자교환기의 성능과 신뢰도, 생산 시기 등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이우재 사장은 “국산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외국기종을 사용할 게 아니라 기계식 교환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참석자들의 의견을 들은 후 “전자교환기 국산화는 모두 일치단결해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면서 “각자 맡은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최 장관은 최순달 소장에게 한 가지 추가 지시를 내렸다.

“연구소는 개발 일정을 확정하고 최선을 다해 개발할 것이며 만약 실패한다면 어떤 처벌이라도 받겠다는 서약서를 간부들이 서명 날인해 장관한테 제출하시오”

이와 관련한 최순달 소장의 회고록 증언.

“최 장관이 `최 소장, 240억원을 들여 개발하는데 자신이 있습니까`하고 묻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개발에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다시 묻기에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최 장관이 `그럼 각서를 쓰시오`라고 했습니다”(자서전 `40년 후 이 아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립니다`에서)

서약서를 작성한 양승택 시분할 전자교환기개발 단장(ETRI 원장, ICU 총장, 정통부 장관 역임, 현 IST컨소시엄 대표)의 말.

“서약서 내용은 최 장관이 이미 말한 게 있어 고민하지 않았어요. 서약서는 `저희 연구단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전자교환기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로 작성했습니다.”

최순달 소장과 양승택 단장, 유완영 교환연구부장(LG정보통신 전무, 오리온전기 사장 역임), 박항구 교환기기연구실장(TDX개발단장 역임, 현 소암시스텔 회장)이 서약서에 서명했다.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는 경상현 부사장(체신부 차관, 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이 서명했다. 이 서약서가 나중에 `TDX혈서`로 불렸다.

최순달 소장의 회고.

“나는 각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개발 성공을 자신하고 있었다.”

최 소장은 외국 전자교환기업체의 고위층과도 전자교환기 개발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그가 소장으로 재임할 무렵 캐나다 노던 텔리콤의 고위층이 내한해 그를 방문했다.

그 고위층이 최 소장에게 물었다.

“교환기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최 소장은 알기나 합니까.”

“잘 모릅니다.”

“모르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하다가 안 되면 당신 회사에 도와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도와주면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네 기술자를 직접 매수해서라도 개발할 것입니다.”

“매수에 실패하면요?”

“술 사준다고 유인해 권총으로 협박이라도 할 겁니다.”

그 고위층은 최소장의 단호한 개발의지를 확인한 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돌아갔다.

그해 5월 21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개 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등 대폭 개각을 단행했다.

체신부 장관에는 최순달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이 임명됐다. 최 소장의 장관 발탁은 의외의 인사였다. 그 자신도 입각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이날 오전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서 간부 회의를 막 끝내고 소장 실에서 쉬고 있었다. 그 때 총무과장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소장님 축하드립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되신 모양입니다. 라디오에서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는 뜬금없는 총무과장의 말에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군”하며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잠시 후 서울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해 과학기술처 기계연구조정관(한국기계연구원장 역임)이었다.

“장관님 축하드립니다.”

“아니 장관이라니 도대체 왜 그러시오.”

“오늘 오후 3시에 임명장 수여식이 있으니 서울로 빨리 올라오십시오.”

그는 장관 임명과 관련해 어떤 사전 연락을 받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과기처로부터 상경하라는 연락을 받았기에 서울로 출발했다. 그는 도중에 라디오 뉴스를 통해 체신부 장관 임명 사실을 확인했다. 그 당시는 라디오가 입각 전달자였다.

그는 청와대로 들어가 오후 4시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이어 5시 체신부 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국민 편익 우선의 체신행정을 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과 대구공고 동문이었다. 전 대통령 3년 선배로 서울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렛패커드에서 근무하다 1976년 귀국해 금성사 중앙연구소장을 지냈다.

최 장관의 취임은 전자교환기 개발에 활기를 불러 넣었다.

최 장관은 연구소장 재임 시 전자교환기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감수한다는 서약서를 최광수 장관에게 제출한 바 있었다. 소장에서 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자리를 걸고서라도 전자교환기를 꼭 개발해야 할 책무가 있었다.

그는 수시로 연구소를 방문해 전자교환기 개발 상황을 보고받고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오명 차관도 틈나는 대로 연구소를 찾아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었다.

최 소장 후임에는 백영학 국립과학관장(충청지역 정보원장 역임)이 6월 18일 임명됐다.

백 소장은 서울대를 나와 과기처 진흥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백 소장 취임 전까지는 선임연구부장을 겸하던 양승택 단장이 소장서리를 맡았다. 양 단장은 전자교환기 개발 당정 협의에도 두 번이나 참석했다.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는 민정당사로 가서 교환기개발 계획을 브리핑했다.

그해 7월 26일.

경기도 용인군 송전우체국에서 500회선 규모의 전자교환기(TDX-1X)를 대상으로 시험운용에 들어갔다. 이 교환기는 `국산 교환기 1호 `였다. 처음에는 판교를 시험장소로 정했으나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측 반대로 송전우체국으로 변경했다. 시험대상자는 362명이었다.

이날 개통식에는 최순달 장관과 백영학 소장, 경상현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 양승택 단장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시스템 보드가 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밖에 몇 가지 문제점도 발견됐다. 한국전기통신공사측은 실패작이고 주장했고 연구소 측은 그만하면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다.

당시는 교환기는 이름이 없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했다. 최종 이름으로 KTX(Korean Division Exchange)와 KTD(Korean Time Division Switch) 두 가지로 집약됐다.

양승택 단장의 회고.

“최 장관 승용차에 동승해 개통식장으로 가면서 KTX와 KTD중에 어느 것이 더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왜 꼭 K자가 들어가야 하느냐. 어떤 의미에서는 열등의식`이라고 하셨다. 나는 한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장관 말씀도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K자를 빼고 조합을 해보니 TDX(Time Division Exchange)가 발음도 쉽고 뜻도 좋아 제안했다. 최 장관도 좋다고 했다.”

이후 전자교환기는 TDX로 부르게 됐다. 시분할교환기 개발 사업단도 뒤에 TDX개발단으로 바뀌었다. 송전우체국의 시험기는 TDX-1X로 명명했다. X(Experimenta)는 시험기를 의미했다. 처음에 `시분할전자교환기`로 불렀다. 이 명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자교환기로 변경했다.

체신부 고위관계자 A씨의 말.

“국회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들은 `시분할이 뭐냐. 이해하기도 어렵고 특히 발음이 점잖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된소리로 발음하면 `시분할`은 어감이 이상했어요. 그래서 간부회의에서 시분할은 빼고 그냥 전자교환기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연구소는 이때부터 실용시험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그해 9월.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시분할교환기 관련 추진사항`을 보고했다. 전자교환기 개발은 전 대통령 관심사항이었다 홍성원 과학기술비서관(대통령 과학기술비서관 KAIST 서울분원장,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회장 역임)이 보고한 내용은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체신부 등 관계부처 간 논의 중인 전자교환기 추진사항은 정리한 것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기획원은 조기에 도입해 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입장이었다.

체신부는 1986~1987년부터 도입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주장했다. 기술적 분석에서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국내개발 전자교환기 공급은 1990~1991년으로 전망했다.

경제수석실은 이런 분석을 근거로 도시형 전자교환기 국내공급은 1986~1987년, 국내개발 전자교환기 공급은 1990~1991년경으로 보고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 정홍식 행정관(정통부 차관 역임)의 회고.

“대통령에게 공급시기를 못 박아 보고한 이상 전자교환기를 빨리 개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교환기 개발이라는 목적지까지 모두 총력질주만 남아 있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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