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스팸 지옥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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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딸아이가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를 사달라고 성화다. PMP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걸로 인터넷강의를 볼 수 없단다. 수능까지 두 달만 사용하면 되니 굳이 새 제품이 아니어도 좋단다. 아비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인터넷 중고장터에 들어갔다. 회원수가 950만명이 넘는다. 운이 따르면 새것과 다름없는 중고제품을 살 수 있으리라. 검색창에 제품명을 입력했다. 예상대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매물정보가 뜬다. 오늘 올라온 매물만 수십건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이건 뭐지. 자세히 보니 절반 이상이 `낚시글`이다. 제목을 클릭하면 “모든 상품을 싸게 파는 곳이 있으니 바로가기를 클릭하세요”라는 내용이다. 10원 경매 사이트다. 시중가격 기십만원짜리 제품을 단돈 몇 천원에 구매했다는 광고글로 도배됐다. 말이 경매지 사기나 다름없다.

유혹을 뿌리치고 중고장터로 다시 돌아와 실시간 매물정보를 살펴보니 가관이다. `여대생~` 등으로 시작하는 성매매 알선 글이 적지 않다. 누군가 10초 단위로 글을 올린다. 낯 뜨겁다. 이 순간에도 물건을 팔거나 사기 위해 중고장터를 방문하는 미성년자가 부지기순데. 화가 난다.

선정성만 놓고 보면 언론사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도 할 말이 없다. 뉴스가 궁금해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뉴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선정적 광고다. 여성의 엉덩이나 가슴, 허벅지 등을 찍은, 피부색이 적나라하게 강조된 사진이 여기저기서 마우스 클릭을 기다린다. 특수효과를 가미해 특정 부위가 씰룩거리는 사진도 있다. 짜증이 밀려온다. 단, 전자신문 사이트에는 그런 사진이 없다.

스팸의 여왕 `김미영 팀장`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접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도 김미영 팀장은 오늘도 내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겠단다. 우리나라엔 돈 많은 김미영 팀장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걸까.

나흘 전엔 카드사로 보이는 곳에서 휴대폰 문자가 왔다. “포털사이트 정보유출로 인한 피해발생. 보안승급바랍니다. www.kbmbcard.com.” 친절하다. 하지만 이 역시 가짜다. 인터넷 피싱이다. 홈페이지 초기화면은 진짜 사이트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하다.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우리는 스팸 지옥에 살고 있다.

불현듯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생각났다. 그는 몇 년 전 내게 청년실업 대책을 제안했던 30대의 젊은 사장이다. 당시는 정부가 청년실업 대책으로 행정인턴 3만명을 채용했을 때다. 이들의 주된 업무가 문서 복사나 정리, 사무실 청소 같은 잔심부름이라고 해서 논란이 되던 시절이다.

그 CEO의 제안은 간단했다. 수만명의 행정인턴을 사이버상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사이버 감시요원으로 활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음란물 유포, 동반자살 권유, 모멸감을 주는 악성댓글이나 욕설, 영화·음악·상용 프로그램 불법복제 등 반사회적 일탈 행위를 모니터링하는 데 자원을 투입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다. 경력 쌓기에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잔심부름보다 효과 면에서 훨씬 낫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또 모니터링 경험을 쌓은 청년이 주변에 `바른생활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도 기대된다고 했다. 죄다 옳은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그는 그해 모니터링 직원으로 십여명을 채용했다. 오늘따라 그가 몹시 보고 싶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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