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숫자에 가려진 혁신의 땀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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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닝 시즌이다. 유럽 몇몇 국가에서 시작한 재정위기가 이제는 지구촌 전체 문제로 번졌다. 각 나라 경제가 함께 불황의 늪으로 슬금슬금 빠져드는 느낌이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외신이 `공포` `두려움` 등의 단어를 섞어가며 미리부터 엄살을 떠는 것도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 주부터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이 하나둘 성적표를 공개한다. 17일(현지시각) 인텔과 야후를 시작으로 18일 IBM·이베이·퀄컴, 그리고 19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버라이즌이 실적을 발표한다. 관심을 끄는 애플(24일), 페이스북(26일) 등도 곧 결과물을 내놓는다. IT 기업의 성적표는 여러 의미에서 중요한 글로벌 경기 지표다. 시스코와 IBM, HP, 인텔, MS 등 IT 시스템과 관련 솔루션을 공급하는 기업의 실적은 글로벌 IT 투자 움직임을 가늠하는 척도로 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베이, 베스트바이, AT&T 등 고객과 직접 만나는 기업 실적은 소비 심리와 실물 경제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기업의 성적표는 증권 투자자와 언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매출이나 이익이 늘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각고의 노력에도 탈출구를 찾지 못하니 경영진은 실적 발표 기간만 되면 하나같이 두통을 호소한다. 뾰족한 수도 없는데 주주의 쏟아지는 비판을 견뎌내려니 그럴 만도 하겠다. 한때 글로벌 증시에서 대장주였던 IT 대표 기업들이 겪는 위기는 미국이나 유럽발 거시경제 변수 때문이 아니다. 신기술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전통산업이 붕괴하고 소비자와 시장이 급속히 변하고 있어서다.

더 이상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몇 % 늘었는지 주당 순이익이 얼마인지로는 해당 IT 기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분기마다 반복되는 숫자 짜 맞추기일 가능성도 있다. 수분기 적자를 거듭하더라도 혁신의 맥을 올곧게 잡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현재가치뿐 아니라 미래가치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 신임 사장을 선임해 혁신 대장정을 알렸던 소니가 지난 17일 32년 만에 최저 주가를 기록했다. 혁신안이 겉핥기라는 투자자의 냉담한 반응 때문이다. 그 반면에 절치부심하던 이베이는 페이팔을 인수합병해 모바일 커머스 붐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2분기 순익이 작년 동기보다 배나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적자 행진을 거듭하더라도 `킨들파이어`를 저가로 공급해 사실상 시장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굳히겠다고 선언한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그래서 무섭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