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자연모사

일본 고속전철 신칸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저소음 고효율 교통수단으로 꼽힌다. 그러나 처음 신칸센이 나왔을 때만 해도 많은 일본인이 불편함을 토로했다. 많은 기술 문제가 지적됐지만 터널을 빠져나갈 때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는 게 가장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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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 엔지니어가 고안한 아이디어 덕분에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물총새가 물속으로 뛰어들 때 물방울이 튀지 않는 점에 착안해 고속 전철 앞부분을 디자인한 것이다. 자연을 참고해 설계를 약간 변경했을 뿐이지만 소음이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전기 소모량도 15% 줄었다. 이전 차체보다 10% 이상 빨리 달릴 수 있게 됐다.

사실 인류는 자연에서 힌트를 얻고 생물을 모방해 많은 기술을 고안했다. 배의 유선형 디자인은 물고기 몸체를 모방하고 날카롭게 자른 철사를 감아 만든 철조망은 장미 가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칼과 화살촉 같은 사냥 도구도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을 모방한 형태다. 듀폰이 개발한 나일론은 비단을 모방한 섬유며 우리가 흔히 `찍찍이`라고 부르는 벨크로 테이프는 엉겅퀴 씨앗을 흉내내 발명했다.

자연에 있는 식물과 동물은 오랜 기간 진화하면서 환경에 최적화된 고효율 시스템을 구현했다. 생체 구조 원리와 메커니즘을 모방해 공학적 난제를 해결하려는 학문이 `자연모사 공학`이다. 자연모사를 생태모방 혹은 생체모방이라고 부른다.

학문적으로 자연모사를 처음 연구한 인물은 미국 신경생리학자인 오토 슈미트다. 슈미트는 1950년 자연모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했다. 신경계 신호처리를 모방해 입력단에서 소음을 제거하고 구형파로 변환한 전기회로인 `슈미트 트리거`를 발명하기도 했다. 이후 많은 학자가 자연모사를 연구했고 학문 분야로 자리잡았다.

10년 전부터 미국·EU·일본 등 선진국은 지속발전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고자 자연모사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소재 기업도 각국 정부와 협력체제를 구축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술 수준에서 가장 앞선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제닌 M 베니어스가 생태모방협회와 생태모방길드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한 이후 자연모사 기술 상용화에 힘쓰고 있다. 베니어스는 1997년 생태모방이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자연모사 개념을 새로 정립했다. 그는 이후 수많은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동식물과 자연 생태계를 모방해 인간생활에 응용하는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생태모방협회는 오토데스크사 후원으로 애스크네이처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자연모사 기술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뉴욕에너지개발연구기구(NYSERDA)는 생태모방길드로부터 자문을 받아 에너지 문제를 자연모사기술로 해결하려는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은 베를린 공대를 주축으로 28개 연구센터 네트워크가 모여 자연모사공학을 연구하는 바이오닉스컨피턴스네트워크(BIOKON)를 설립했다. 영국은 기업과 대학을 중심으로 `바이오닉스(BIONICS)`라는 네트워크를 2002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단체에는 세계 500여명 전문가가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뉴스레터 발행과 포럼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을 중심으로 자연모사에 관한 정책적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나고야대학·교토대학 등을 중심으로 `21세기 COE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생체모방형 공학 등 다양한 대학원 교육 프로그램도 실행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발수재료·도료·나방눈 구조를 활용한 광학필름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지난해 후쿠시마 원자력 참사 이후 일본은 범정부 차원에서 자연모사 원천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식경제부·교육과학기술부·환경부 등에서 자연모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범부처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개별 부처 단위에서 추진되고 있어 한계가 있다. 중복 지원 문제뿐만 아니라 상용화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25년 자연모사 관련 제품과 서비스 시장 규모가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시장만 3500억달러 규모를 형성하고 160만개 이상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덕 산업기술평가관리원 PD는 “자연모사 기술을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정책조정위원회를 설립해 조율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래 세대 눈높이에 맞춰 자연을 응용하는 기술이 인류와 자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경험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프로그램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모사 부문은 아직 기초 연구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얼마든지 있다”면서 “해외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상용화 단계에서 우리가 속도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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