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01>(1)박정희 대통령의 두 가지 지시

TDX(1)―박정희 대통령의 두 가지 지시

“나 대통령인데 잘 들립니까.”

“예? 누구십니까.”

1975년 2월 4일 낮 체신부 장관실.

박정희 대통령이 장관실에서 경북 울릉군 소재 울릉군청 배재규 내무과장과 전화 통화를 갖고 음질상태를 점검했다. 이날 통화는 예고 없이 이뤄졌다.

전화를 받은 배 과장은 느닷없이 “나 대통령인데 전화가 잘 들리느냐”고 묻자 크게 당황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대통령이라니?” 깜짝 놀란 배 과장은 재차 “누구냐”고 물었다.

박 대통령이 갑자기 전화를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체신부를 연두 순시해 장승태 체신부 장관(7·8·9·10대 국회의원 역임)으로부터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 받았다. 그 당시 박 대통령은 연초 각 부처를 돌며 업무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농촌과 도서지방에 전화 공급을 늘리도록 하라”면서 “전자교환기는 국내 기술진을 총 동원해 독자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해서 자체 개발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앞서 장 장관은 “전화공급을 늘려 전화난을 해소하겠다”면서 “도청 소재지 전화를 완전자동화 하겠다”고 보고했다.

11시 53분경 체신부 순시를 끝낸 박 대통령은 체신부 장관실에서 장승태 장관과 전화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 장관이 “전화 성능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지금 이 자리에서 전국 어느 곳이든지 통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행정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그냥 넘어갈리 없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 지금 울릉군청과 전화를 좀 해보라”고 즉석에서 지시했다. 장 장관이 직접 전화로 울릉군청을 부르자 배 과장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장 장관으로부터 전화기를 넘겨받아 배 과장과 5분여 대화를 나눴다.

△박 대통령=나 대통령인데 잘 들리나요.

△배 과장=(깜짝 놀라) 누구십니까.

△박 대통령=울릉도 전화사업이 좋아졌다고 해서 직접 전화를 건 것인데 내 말이 잘 들립니까.

△배 과장=네, 잘 들립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박 대통령=나 대통령입니다. 시내통화처럼 잘 들리네. 그런데 누구요.

△배 과장=네, 배재규 내무과장 입니다.

△박 대통령=외딴 곳에서 수고가 많습니다. 불편한 점은 무엇입니까.

△배 과장=없습니다.

△박 대통령=낙도나 도서벽지에서 자기 일에 충실한 공무원들이야말로 귀중한 존재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참으면서 서로 도우며 일합시다.

△배 과장=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37년 전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화난을 겪던 시절 이야기다.

이런 국내 전화적체를 일거에 해소한 게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이다. 한국ICT사(史)에 이정표로 기록할 쾌거였다. 세계 10번째 개발이었다.

하지만 전전자교환기술 개발까지는 곡절이 많았다. 시작에서 개발까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걸렸다. 박정희정부에서 시작해 전두환정부에서 개발을 완료했다. 김영삼정부들어 전전자교환기 1000만회선을 돌파해 1가구 2전화시대를 여는 데까지 또 11년이 소요됐다.

박 대통령은 체신부 순시에 앞서 1월 14일 10시부터 2시간 40분간 가진 연두기자회에서 도 “농어촌 전화사업을 적극 추진해 전화 보급률을 크게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해 8월 22일.

체신부는 전자교환기 국산개발을 위해 1976년 1월에 전자교환기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체신부는 이를 위해 전자교환기연구소법안을 마련해 그해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전화 사업은 체신부가 주무 부서가 아니었다. 경제기획원과 상공부가 주역이고 체신부는 전화설치 업무만 전담하고 있었다. 그 무렵 정부 고민은 전화적체를 해소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업계와 부처 입장이 엇갈려 전자교환방식을 기존의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꾸는 일은 진전이 없었다.

정부에서 이 일에 가장 적극성을 보인 사람은 김재익 경제기획원 기획국장(대통령 경제수석 역임, 작고)이었다. 그는 전자식 교환기 도입만이 전화적체를 해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개혁적 발상이었다.

1975년 10월경 김재익 국장은 과기부에서 열린 회의석상에서 경상현 한국원자력연구소 에너지시스템연구실장(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을 만났다. 경 박사는 정부 과학기술자 유치계획의 일환으로 귀국한 과학자였다.

회의가 끝난 후 김 국장이 경 박사에게 미국에서 담당했던 업무를 물었다.

경 박사가 “미국에서는 아날로그 전자교환기가 나오는데 구식인 기계식 교환기를 계속 설치하는 것이 좋은지, 운영비와 장비구입비 등 수요측정에 대비해 경제성을 판단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이 반색을 하며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해 김 국장과 함께 경제기획원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남덕우 부총리(국무총리, 한국무역협회장 역임)를 만났다.

남 부총리는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우리도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교환기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 쪽은 아날로그 전자교환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기계식교환기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경 박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에 경 박사는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은 기계식을 아날로그 전자교환기로 교체하는 것이 대세”라고 대답했다.

이 후 김 국장과 경 박사는 일주일에 1~2번씩 두 달 여를 계속 만났다.

경상현 전 장관의 회고.

“김 국장과 저는 아날로그전자교환기 도입이 전화적체를 해소할 수 있고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된다는데 점에 의견이 같았습니다. 당시 아날로그 전자교환기술을 곧바로 도입하느냐, 또는 다지털 전자교환 기술을 국내기술진이 개발할 때까지 기계식 교환기를 계속 사용하느냐를 놓고 찬반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경 박사는 아날로그 전자교환 기술 도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김 국장에게 넘겨주었다.

1976년 2월 4일 오전 10시.

박정희 대통령은 체신부를 연두 순시, 박원근 장관(예비역 중장, 한국반공연맹 이사장 역임)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거듭 “낙도 전화사업 목표시기를 앞당겨 완수하라”고 지시했다.

그해 2월 27일 남덕우 부총리주재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경 박사가 제안한 방안이 안건으로 상정했다. 정부는 경 박사의 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전자교환기 도입 타당성 검토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맡기고 그 책임자는 경상현 박사로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가 만든 방안이 교환기 도입과 기술 개발 정책이 된 것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 증언.

“전화 교환방식을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기자회견에서 공표하자 아니나 다를까 업체들은 맹렬한 로비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현재 교환기의 수명이 남아 있는데 새 시설을 도입해 외화를 낭비하고 중복 투자를 하려 한다고 김재익 기획국장을 매도하기 시작했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해 압력을 가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체신부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나는 김 국장에게 두 업체의 교환기 투자의 감가상각 자료를 구해보라고 지시했다. 한편 체신부 차관을 불러 설득했으나 좀처럼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다. 김 국장은 감가상각 자료를 구했다며 나에게 보고했는데 한 업체는 감가상각이 이미 끝난 상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체신부의 방침도 보고했다. 결국 1976년 2월에 체신부 차관이 경질되고 대통령수석비서관인 이경식 씨(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한국은행 총재 역임)가 그 자리로 가게 됐다.”(회고록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경 박사는 이 일을 하기 위해 1976년 2월 KIST시스템연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자교환기 도입 타당성 검토업무는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경 전 장관의 당시 상황 증언.

“그해 3월부터 미국과 일본, 독일의 교환기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을 검토했습니다. 4월 17일 안내서를 AT&T, ITT, GTE, NEC, 지멘스, 후지쯔 등 6개 업체에 보냈고 이들의 응찰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최종 검토 결과를 7월초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정부는 9월 체신부 이경식 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전자통신개발추진위원회(TDTF)를 구성하고 전자교환기 도입을 결정했다. 경 박사팀은 소속을 TDTF으로 옮겨 전자교환기 기술도입을 위한 부문별 실무 작업을 담당했다.

그해 12월 박원근 체신부 장관이 아날로그 전자교환기 국산화와 통신망 및 전자화, 그리고 디지털 전자교환기술 국내개발 계획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 경 박사는 박 장관을 수행해 이 자리에 배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박 장관에게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하나는 전자교환기기술을 전담할 연구소를 설립할 것과 다른 하나는 산업은행 출자로 전전자교환기 생산업체를 설립하라는 지시였다.

정부는 그해 12월 31일 KIST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를 설립했다. 초대 소장으로 KIST 부소장인 정만영 박사가 취임했고 경 박사는 도입 기종 선정 총괄책임을 맡았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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