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을 두고 과학기술계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아까운 과학기술계 인재를 잃은 것에 대한 비통함 때문이다.
그는 성품이 대쪽 같던 과학기술인이다. 소신이 뚜렷했다.
지난해 기관장 공모 당시 면접에서 이사들은 그에게 기관 통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생명연을 결코 통합해선 안 된다”며 “그게 조건이라면 기관장 후보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취임하며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자신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한 기관장으로도 유명하다.
정 원장은 “사기꾼 소리 들어가며 25년간 끈질긴 연구로 끝내 씨감자 대량 생산 방법을 찾아냈다”고 했다.
해외 생물소재 사업 수주를 위해 5년간이나 관료를 설득했다. 서울을 발이 닳도록 올라와 공무원을 쫓아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추진력도 대단했다. `기왕지사 할 일이면 제대로 하자`는 것이 그의 생활철학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늘 `개혁적인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했다. 형식보다 실질적인 것을 중시하고 껍질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실험실파였다.
그의 가정사에도 관심이 쏠렸다.
정 원장은 대구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 치하 학생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로 대학교수를 지냈다. 어린 정 원장에게 공부하라는 말보다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군대 시절에는 육군 학군단(ROTC) 장교로 입대, 대 무장공비 작전과 10·26, 12·12,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며 목숨을 잃을 위기도 겪었다. 이때부터 어지간한 어려움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정 원장은 기관 자체를 `서로 믿고 의지하는 또 하나의 가정이자 가족`처럼 여겼다. 정 원장이 무엇보다 바랐던 것은 `가장 행복하고 활기찬 KRIBB(생명연)`였다.
이제 정 원장은 그의 꿈과 열정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의 꿈과 열정은 과학기술인의 가슴에 영원히 살 것이다.
박희범 전국취재 hbpar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