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4개국에도 CDMA 개척단을 파견합시다.”
1997년 10월 중순. 중남미 3개국 CDMA 개척단 활동을 평가한 정보통신부는 아시아 국가에도 CDMA 개척단을 파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민·관·연 공동 개척단이 중남미 지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외환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데 정보통신 역할이 절대 필요했다. 그해 10월부터 신규 PCS사업자들이 CDMA 상용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시작한 것도 한 요인이었다.
강봉균 정통부 장관(재경부 장관, 국회 16·17·18대 의원 역임)의 회고.
“그 무렵 정부는 외환금융 위기극복에 전력투구했어요. 정통부는 정보통신산업의 해외진출로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장개척단을 아시아 지역에 파견키로 한 것은 이 일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개척단 파견 대상국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호주, 싱가포르 4개국으로 정했다.
이들 4개국은 김영삼 대통령이 국빈방문한 나라로 이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협력방안을 논의한 상태였다. 특히 필리핀에서 김 대통령은 라모스 대통령과 경호사령부에서 함께 조깅을 하고 농구를 하면서 대내외에 양국 간 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개척단장은 중남미 지역을 다녀온 정홍식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통신기술협회 이사장)이 맡았다.
정홍식 단장의 증언.
“당시 한국은 외환 금융위기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시장개척단 일행은 CDMA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척단 구성 실무작업은 권병욱 정통부 국제협력국 사무관(현 방송통신위원회 편성평가정책과장)이 담당했다.
권 사무관의 말.
“당시 저는 국제협력국에서 중남미 담당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아시아 개척단 계획안을 만들라고 해 제가 했습니다. 그해 8월에 개척단 구성 작업을 한 적이 있어 저에게 일을 맡긴 것입니다.”
아시아 개척단에는 부품업체 대표를 포함시켰다. 이는 통신사업자와 부품업체의 해외동반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정통부에서는 중남미 지역에 갔던 황의환 부가통신 과장(현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 부회장)이 빠지고 대신 신용섭 정통부 기술기준과장(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들어갔다.
신 과장은 CDMA 개발과정에 핵심역할을 한 담당자였다. 그는 1993년 11월 기술기준과장으로 발령난 후 6년간 CDMA 업무만 담당했다.
신 과장의 회고.
“CDMA 업무를 맡은 지 6년 후인 1999년 정보보호과장으로 발령이 나서야 비로소 CDMA 업무에서 손을 뗄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6년 간 한 분야 업무를 담당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에서 한기철 이동통신계통연구부장(현 인터넷연구부문 책임연구원)과 정인명 연구실장(현 한국통신사업자협회 방송시험인증단장), 한국통신(현 KT)에서는 오성묵 부장과 홍영도 부장, 문기운 차장이, SK텔레콤에서는 표문수 전무(SK텔레콤 사장 역임, 현 고문)와 마중수 이사(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신세기통신에서는 이성준 팀장, 삼성전자에서는 홍순호 이사(현 부사장)와 우형래 부장, 김용식 과장, 오용섭 과장, LG정보통신에서는 연철흠 연구실장과 문형렬 과장, 현대전자에서는 장병준 전무와 박노성 이사, 박찬종 이사, 이기승 부장, 나창영 차장이 참여했다. 부품업체 대표로 서두인칩 유영옥 사장과 에이스테크놀러지 오정근 부장과 박미란 과장이 개척단에 가세했다.
개척단은 CDMA 포럼과 정부 관련부처 고위인사 면담, 통신업체 방문, 한국 업체의 방문국 통신시장 진출 지원 등으로 일정을 짰다.
11월 16일 오전 시장개척단은 10시 반 대한항공편으로 첫 방문국인 필리핀으로 출발했다. 정 단장은 17일 오전 신용섭 과장과 한기철 부장 등과 필리핀 통신·교통부 차관을 면담했다. 당시 필리핀에는 한국통신(현 KT)과 LG정보통신, 삼성전자 등이 진출해 통신망 구축사업과 TRS전국망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정 단장은 차관 면담에서 필리핀 PCS 사업자 선정과 필리핀 주민등록 전산망 사업에 한국 통신업체가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필리핀 측은 LG정보통신과 기아정보통신의 사업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정 단장 일행은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을 방문, 박동순 대사와 환담했다. 이어 필리핀 국가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면담해 한국 통신위원회 개편 내용을 소개하고 양국 간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필리핀 CDMA 포럼은 11월 18일 오후 3시 마닐라 프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포럼장에는 박동순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와 서용현 공사, 필리핀 통신.교통부 차관보, 국가통신위원회 의장, 담당 국장, 통신업체 대표, 실무자 등 220여명이 참석했다.
박동순 대사 환영사와 정홍식 단장 축사에 이어 신용섭 과장이 `한국의 CDMA`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한기철 연구부장은 `한국 CDMA 무선통신기술의 연구개발 현황과 발전전망`을 오성록 부장이 `한국 CDMA 상용서비스 계획`, 마중수 이사가 `CDMA 셀룰러 상용서비스 경험`을 소개했다. 연철흠 연구실장은 `한국 CDMA 시스템 및 단말기 제조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오후 6시부터 참석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포럼이 끝난 후에도 면담자가 밀려 나중에는 개별 면담을 했다.
마중수 이사의 기억.
“그들은 CDMA 성능을 퍽 궁금해 했어요. CDMA를 도입하면 양질의 통화품질이 나오느냐고 묻더군요.”
개척단은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인도네시아 일정을 소화했다.
정 실장은 20일 오전 인도네시아 우전관광부를 방문, 양국 간 통신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인도네시아 CDMA 포럼은 이날 오후 2시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렸다.
포럼에는 민형기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와 우전관광부 장관 고문, 인도네시아 통신협회 회장, 통신업체 대표 등 110여명이 참석했다.
인도네시아 CDMA 포럼은 필리핀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했다. 홍순호 이사가 `한국 CDMA 시스템 및 단말기 제조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개척단은 참석자들과 질의응답과 개인면담 시간을 가졌다.
호주 일정은 11월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했다.
개척단은 호주에서 날벼락 같은 뉴스에 경악했다. 한국이 외환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보도였다. 경제신탁통치라는 IMF사태가 터진 것이다. 이 소식은 세계 언론이 주요 뉴스로 계속 보도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라던 한국 위상은 순식간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내 몰렸다. 시장개척단의 충격은 컸다.
“경제의 펀더맨털(기초)가 좋아 위기가 아니라더니. 도대체 금융당국은 뭘 한거야.”
정인명 연구실장(현 한국통신사업자협회 방송시험인증단장)의 기억.
“CDMA를 세계화하려고 호주에 도착했는데 한국이 국가 부도사태를 맞았다는 뉴스가 계속 나와요. 기가 막히더군요. 체면이 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한국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대로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홍식 단장은 오전 10시 한국대사관을 방문, 문동석 대사와 환담했다. 이어 호주 통신예술부 차관을 면담해 호주가 관심을 기울이는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개발과 표준화에 양국 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호주 주파수경매에 한국이동통신 사업자의 참여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호주는 그해 12월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종합전시장에서 열리는 `97 소프트 엑스포`에 참가키로 한 상태였다.
호주 CDMA 포럼은 25일 오전 9시 30분 멜버른 소피텔 호텔에서 열렸다.
포럼에는 문동석 호주 주재 한국대사와 호주 통신예술부 차관보와 담당국장, 통신업체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호주 통신부 과장이 호주 멀티미디어정책을 설명했다. 포럼은 종전과 같이 진행했으며 박노성 현대전자 이사가 `한국 CDMA 시스템 및 단말기 제조현황`을 발표했다. 이어 참석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방문국인 싱가포르에는 11월 26일 밤에 도착했다.
27일 오전 정 단장은 리 신양 싱가포르텔레콤 사장과 면담했다. 싱가포르텔레콤은 1974년 싱가포르 전화국과 통신청을 합병해 설립한 거대 국영 통신사였다.
리 사장은 리콴유 전 총리의 막내 아들이었다. 리 전 총리는 26년간 총리로 재임했고 그의 큰 아들인 리센퉁은 당시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2004년 7월 싱가포르 총리직에 올랐다.
리 사장은 1994년 4월 싱가포르텔레콤 부사장을 거쳐 사장에 올랐다. 1957년생인 그는 자신만만하고 패기가 넘쳤다.
정 단장은 리 사장에게 싱가포르텔레콤 모바일 CDMA시스템 장비 공급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통신업체의 싱가포르 진출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기철 연구부장의 기억.
“싱가포르텔레콤에 GSM 대신 CDMA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고품질로 통화 비밀 보장이 가능한 점을 설명했어요.”
싱가포르 CDMA 포럼은 11월 27일 오후 3시 하이엇 레전시 호텔에서 열렸다. 박상식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와 싱가포르 통신청장, 통신업체 개발자 등 110여명이 참석했다.
11월 28일 오후 정 단장은 싱가포르 통신부 차관을 방문, 양국 간 이동통신사업에 한국 통신업체의 진출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시아 4개국에 CDMA 기술을 전파하고 한국기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한 개척단은 28일 밤 10시 40분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개척단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