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원숭이 재판과 시조새

1925년 7월 21일. 미국 테네시주 한 마을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개신교 자유주의자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근본주의자들이 테네시주 내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법을 통과시켰다. 반발한 한 고등학교 생물교사 존 스콥스는 생물학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다.

그는 버틀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법정에서 스콥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년 뒤 주 대법원은 이 판결을 뒤집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버틀러법은 유럽의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40년 뒤 폐지됐다. 이 재판은 1960년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진화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원숭이 재판`은 1960년 미국에서 제작된 `신의 법정`이란 영화에도 모티브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조론과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 `시조새`가 기폭제다. 한 학술단체가 “화석 기록에 시조새를 포함해 어떤 중간 종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교과부에 청원서를 냈다. 교과서 출판사들은 시조새 부분을 수정·삭제하기로 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 관련 내용 일부가 삭제될 위기에 처하자 과학계에 비상이 걸렸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충돌로 비화했다.

과학 교과서는 과학적 이론을 다룬다. 진화론은 많은 경험·연구 자료를 축적한 이론이다. 과학적 이론은 많은 증거로 지지되고 더 완벽한 이론이 나오기까지 사실로 인정받는다. 이미 일부 진화학자들이 시조새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새로운 연구 성과가 있다면 이를 바로잡으면 된다. 시조새가 진화론에 적절한 사례가 아니라면 다른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다. 단순히 진화론과 창조론 옹호 다툼을 벌이는 건 과학 교육에 도움이 안 된다. 87년 전 벌어진 세기의 재판을 우리가 재현할 필요는 없다.


윤대원 벤처과학부 차장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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