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양대 이동통신업체인 보다폰과 텔레포니카가 아이폰 보조금을 전격 폐지했다. 스마트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다 약정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다른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는 가입자가 늘면서 수익률이 점점 하락했기 때문. 애플이 약정계약 시 할인받을 수 있는 금액까지 제시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통사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양대 이통사의 `실험`에 세계 이통사와 삼성전자 등 타 제조업체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1일 유럽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보다폰과 텔레포니카는 지난 3월부터 스페인에서 아이폰 보조금을 아예 없앴다. 신규 고객들은 800달러에 달하는 아이폰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텔레포니카는 대신 월 이용요금에 45달러 추가 비용을 내는 할부 계약을 도입했다. 비토리오 콜라오 보다폰 CEO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조금을 없애자 당장 가입자 수가 떨어졌다. 5월말 기준 스페인에서만 텔레포니카 가입자 17만명이 이탈했다. 보다폰은 9만명에 이른다. 반면에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3위 사업자 프랑스텔레콤은 13만명을 추가 유치해 반사이익을 얻었다. 번스타인리서치는 그러나 “가입자는 일시적으로 줄겠지만 순이익은 되레 25% 정도 늘어날 것”이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프랑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리아드는 지난 1월 스마트폰 보조금을 아예 없앤 `프리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용자는 공 기계를 구매한 뒤 프리모바일 요금제에 가입하면 된다. 프리모바일은 5개월 만에 260만 회원을 끌어 모으는 저력을 과시했다.
미국 이통사들은 유럽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보조금 폐지 전 단계 수준인 신규 단말기 업그레이드 비용을 올리는 중이다. 버라이즌은 4월 일부 스마트폰에 30달러 업그레이드 수수료를 부과했고 AT&T와 스프린트 역시 수수료를 2배 인상했다. 버라이즌은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소비자들이 준비되기 전에는 강요할 수 없다”고 했지만 보조금 폐지 정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애플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등 600달러 이상 고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는 기업들엔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CLSA는 지난해 애플 아이폰 1대가 판매될 때마다 이통사들은 약 400달러의 보조금을 지출했고 애플 수입의 42%는 이 보조금에서 나온 것으로 추산했다. 휴대폰 제조사의 수익이 급락할 수 있는 포인트다. 프랑스에서는 보조금을 없앤 일리아드의 등장으로 지난해 2400만대 팔린 `약정 걸린` 단말기가 올해 2000만대로 수치가 뚝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애플 역시 전략을 다양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이통사가 아닌 중소형 이통사 버진 모바일, 립 와이어리스 등과 계약을 맺고 선불 아이폰을 유통시키고 있다. 유럽 중소형 이통사와 계약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다. 피에르 페라구 번스타인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보다폰과 텔레포니카가 얼마나 고객을 잘 유지하느냐에 따라 세계 이통사의 향후 전략이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보조금 폐지 이후 이통사 가입자 증감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