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이 꿈꾸는 미래 모습 중에 `과학자`가 사라졌다. 대신에 안정적이고 고수익이 보장되는 의학계열 진학을 원하는 게 현실이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나눔포럼 대표(52)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과학기술계의 리더십 부족에서 찾았다. 청소년이 보고 배울 `멘토`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18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박 대표가 지난달 `한국과학기술나눔포럼`을 설립한 배경이다.
박 대표는 지난달 29일 상임대표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포럼은 이공계에 관심 있는 청소년에게 과학기술인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기 위해 전·현직 과기계 인사 230여명을 발기인으로 창립했다. 박 대표는 “의원활동 시 송파를 중심으로 과학재능기부 사업을 했던 `송파과학기술나눔포럼` 노하우를 토대로 전국단위 포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은 혁신의 `아이콘`입니다. 과학기술 혁신으로 인류 문명이 발전했고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이르는 우리 경제도 과학기술이 없었으면 불가능합니다. 창조적 지식과 기술 창출이 있어야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박 대표는 “이공계 위기는 인재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 꿈을 꾸지 않는 시대를 반영한다”며 “꿈을 잃은 이들에게 과학기술의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가 이끄는 포럼은 롤모델을 세워 과기계 리더십을 회복할 계획이다. 이공계를 포기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과학의 길을 걷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깨우치게 하는 것이 목표다. 박 대표는 “자신이 닮고 싶은 과학자가 있다면 그 발자취를 따르며 무엇을 해야 꿈을 이룰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중등교육과정에서는 미흡한 과학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은 앞으로 중견 과학자 강연과 학생·학부모를 위한 이공계 분야 설명회를 진행한다. 송파과학기술나눔에서 학생을 상대로 대전연구소 견학을 실시한 것처럼 현장체험사업도 시작한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인이 자발적으로 지식나눔에 뛰어든 것이 포럼의 특징입니다. 과기계에서 당면한 과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해결해 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포럼을 통한 과학문화 확산은 단순히 후진 양성에 머물지 않겠다는 게 박 대표 구상이다. “과학기술계 리더십 회복은 결국 과학문화 확산과 맞닿아 있습니다. 과기계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 생태계를 회복해 나가겠습니다.” 포럼은 중견 과학자· 교육자 등과 함께 로드맵을 설정해 과학 중심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특히 갈수록 줄어드는 여성의 이공계 진출에 우려감을 표했다. 그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되고 싶은 여학생이 있지만 막상 대학에 입학하면 이공계열에서 여 교수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롤모델이 없으면 학생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성 과학기술인 부족은 과기계 폐쇄성 탓도 있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롤모델이 필요하지만 기성 교수사회에서 여성 동료를 뽑는 일은 드문 일입니다. 이공계열 대학교수 사회가 너무 닫혀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재를 발굴하고 진로를 선택할 길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교육 체계가 과학문화를 확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박 대표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입시제도가 잘못 운영된 탓도 있다”며 “대학입시 전에 모든 교육과정에서 생태계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과학탐구영역 비중이 줄면서 중·고교에서 배워야할 기본 과학 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1979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물리학에서 여학생이 수업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박 대표는 “입학 전만 하더라도 부모님은 인문계열 전공을 선택하라고 성화가 심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우주현상을 분석하고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근원적 질문에 답해주는 학문이 물리학이라고 생각했다”며 “현실에 구속되지 않는 기초학문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주변 반대에도 자신만의 꿈을 향해 도전한 사람들이 결국 지금의 부족하지만 과학강국을 만든 주역이었다는 설명이다.
강병준·권동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