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법원에서 나온 의미 있는 판결 하나. 종합편성채널 선정과정에서 작성된 방송통신위원회 회의록 등 과정 일체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종편은 그동안 불공정, 부실 심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4대 거대 언론사에 방송사업권을 허가하면서 의혹만 부풀린 채 심사과정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심사 기간도 일주일 만에 뚝딱 해치웠다. 심사요건을 제대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기계적인 요건만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회의록 등이 공개되면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며 반대 세력들이 주주로 참여한 법인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를 들어 정보공개 자체를 반대해 왔다.
오히려 특혜시비만 양산했다. 종편은 상업방송임에도 수천억원에 달하는 송출료를 낼 필요가 없는 의무전송 채널이 됐으며 지상파방송과 가까운 채널을 배정받았다. 미디어렙법으로 3년간 직접 광고영업을 할 수 있는 길도 터줬다. 당연히 내야 하는 방송발전기금도 면제해줬다.
뉴미디어의 초기 자리매김을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미디어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란 목표도 제시됐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뉴미디어가 아닌 거대 올드미디어가 4개씩이나 출범하면서 미디어시장의 혼란만 지속되고 있다. 종편의 과도한 영업으로 중소미디어의 어려움은 가속화되고 있으며 외주제작사의 토양은 더욱 황폐화 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방통위의 주장을 수긍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으로 본 법원의 판결이 상식적으로도 맞다. 방송의 공익성을 주장하면서 방송사를 4개씩이나 선정하는 과정을 비밀로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그만큼 법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던가. 세 사람의 입이 있지도 않은 범을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모기 떼 소리가 우뢰 같고(聚蚊成雷), 쌓인 비방이 뼈를 다 녹인다(積毁銷骨)는 얘기까지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숨기려 하면 그만큼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다. 국민의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방송사업자를 선정하면서 못 밝힐 게 뭐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방통위 역시 그간 종편 선정 과정에 한 점 의혹이 없음을 누차 강조했다. 방통위의 주장처럼 당당하다면 못 밝힐 게 없다.
오히려 법원의 판결이 방통위의 `억울함`을 벗겨줄 것이다. 재판부가 종편 사업자들에 대한 부적절한 출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선정절차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일견 방통위의 입장을 존중한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종편 정책을 주도한 위원장도 바뀌었다. 항소한다고 해도 제스처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판결에 불복하는 모양새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기류가 강하다. 어서 빨리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분위기다. 어차피 공개될 것이라면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성화요원(星火燎原)이라고 했다. 작은 불씨가 퍼지면 넓은 들은 태울 수 있다는 의미다. 가벼운 깃털도 쌓이면 배가 가라앉는 법이다(積羽沈舟). 부처 내부에서도 이론이 있는 것을 방치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愚)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