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지원을 위한 자금이 넘친다. 정부에서는 1조원 넘는 투자액을 조성했다. 성공한 벤처 1세대는 후배 벤처기업인 지원을 위해 엔젤투자에 나섰다. 청년들이 꿈을 펼치기 좋은 환경과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창업한 지 3년 이내, 종잣돈으로 막 사업을 시작한 회사들이 첫 번째 엔젤투자를 받기 용이한 상황이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투자를 유치하는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시리즈A부터 B·C·D로 이어지는 투자 생태계가 잘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엔젤 투자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투자자도 분명 필요하다.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의 발판이 되겠다고 나선 기업가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사장을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이 만났다.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최근 벤처 1세대들이 스타트업기업 인큐베이터로 나서고 있다. 벌어들인 돈을 후배 기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까지 한다. 이런 현상에 견해를 듣고 싶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사장=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런 움직임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추세가 계속되면 성공적인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도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요한 게 액셀러레이터를 거쳐 엔젤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큰 규모의 투자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투자를 받아서 성공한 기업들에 두 번째 스테이지(stage)를 마련해주는 투자자가 필요하다. 스카이레이크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허운나=8000억원이라는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그 중에 성공스토리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공유하고 싶은 성공 스토리가 있다면 들려달라.
▲진대제=처음 1호 펀드 300억원으로 투자할 때 스타트업기업을 주로 봤다. 총 10곳 정도 했는데 그 중 성공한 회사가 두 개다. 특히 최근 인텔에 350억원에 인수합병(M&A)된 올라웍스도 아주 초창기에 투자했다.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술력 있는 회사다. 또 다른 사례는 인벤센스다. 동작인식 회사다. 이곳은 지금 20배 성장했다. 이후에는 펀드 규모도 너무 커져서 소액 투자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좀 더 큰 회사를 중견기업으로 키우자고 생각해서 스타트업 투자는 안 하고 벤처기업 투자만 해왔다.
-허운나=이번 M&A는 국내기업이 해외기업에 인수된 좋은 사례다. 사업할 때는 혼자서 하기보다 제대로 된 투자자와 함께 M&A를 고민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사업하는 사람이 혼자서 다 하려고 하니까 문제였다. 기업이 M&A를 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이야기해달라.
▲진대제=일단 CEO는 창업할 때 이 회사를 나중에 상장할 건지 중간에 M&A할 건지 생각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목표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회사 구성을 달리 해야 한다. IPO를 하려면 매출액이 많아야 한다. M&A가 목표라면 매출은 많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적자를 내도 된다. 기업을 인수할 때 고려하는 사항은 지식자산, 기술개발 능력이다. 말하자면 기술력만 있으면 인력을 데려오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산다. 대차대조표니 재무제표니 하는 것들을 보는 게 아니다. M&A를 바란다면 개발에 매진하는 게 맞다.
-허운나=그동안은 구분을 안 했다. 좋은 정보가 됐다. 많은 벤처기업이 투자를 받고 싶어하지만 투자자의 요구를 잘 몰라서 준비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할 때 무엇을 가장 중심적으로 보는지 알고 싶다.
▲진대제=가장 첫 번째로 보는 게 회사 사업 영역이다. 사업 분야 전체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성장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만약 100억원 규모밖에 안 되는 시장이라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고 본다. 이스트소프트에도 투자했는데 NHN처럼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온라인·e커머스 창구역할을 잘할 회사라고 생각했다. 줌에 들어가면 네이버·다음 등 필요한 창이 다 뜬다. 게임업체 위메이드에도 투자해서 재미를 봤다. 150억원 투자해서 500억원을 벌었다. 게임에서 코리안 모델이 있다. 온라인게임은 한국이 만들어 온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소니 등에서 만들던 콘솔게임은 이제 하향세다. 온라인게임은 지속 성장하고 있다. 다자간 게임이 가능하다는 게 큰 강점이다.
스타트업기업들이 시도해볼 만한 업종에는 타인에 대한 진입장벽뿐만 아니라 창업자 자신도 쉽게 풀 수 없는 큰 문제를 풀겠다고 접근했으면 한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창업자들이 너무 몰리는 것 같다. 유망한 업종이라도 많은 업체가 뛰어들면 금방 레드오션이 된다. 또 글로벌 성공 가능성도 봐야 한다. 국내 특수 상황보다는 글로벌 환경에서 기술과 고객 트렌드를 예측할 필요가 있다.
노트북 하나만 놓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창업이 용이한 점이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창업한다는 건 어렵다. 하지만 반도체 팹리스기업처럼 설계능력과 상품기획력을 갖추면 제조시설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모바일기기에 꼭 필요한 모바일TV(DMB), 위성항법장치(GPS) 반도체 등은 모두 스타트업기업이 개발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시절부터 관련 기업에서 일을 해보거나 취업 초기에 하드웨어를 경험해 보는 게 좋다.
-허운나=이제는 어떤 산업도 IT와 융합돼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기업도 융·복합이 이뤄져야 한다.
▲진대제=전통 IT에서는 모바일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자동차 등 다른 산업군에는 IT가 스며들고 있다. 그런데 전통산업, 특히 자동차 쪽을 보면 엔진, 배기가스 컨트롤러 등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지 못한다. 외국에서 다 한다. 선박도 마찬가지고 바이오 쪽도 슈퍼컴퓨터 등 사용해서 하는 일이 많다. 2003년까지 인류가 만들어 온 데이터 양을 최근에는 이틀이면 만든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소화하고 활용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허운나=K팝이 한류 바람을 이끌고 있는데 한류 마케팅을 잘 활용하면 글로벌하게 창업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대제=스타워즈, 반지의제왕 같은 거대한 작품이 나올 정도로 한류가 성장한 건 아니다. 전 세계적인 임팩트를 주는 건 아직 어렵다. 그래도 한류 열풍을 타고 첨단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안다. 김치, 마늘 같은 걸 연구해서 냄새를 없애는 음식을 만들거나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유산균을 유지하는 기술 개발 등 응용할 수 있는 게 많다. 이건 음식과도 관련 있지만 바이오산업에 포함되기도 한다. 최근 스타트업 분위기가 단순한 아이템으로 쉽게 창업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조 단위 회사가 되려면 단순한 걸로는 안 된다. 사업에도 깊이가 있어야 한다.
-허운나=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생활 전반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겠다. 그래서 창의적인 스타트업기업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한번 지금과 같은 창업붐을 겪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설립된 회사가 많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구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은 안 나왔다. 그때와 지금 차이는 뭐라고 보는지.
▲진대제=차이가 많다. 당시에는 아이디어가 있다고만 하면 벤처 속성, 즉 리스크를 따지지 않고 묻지마 투자를 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그때는 신생기업에도 큰 액수 투자를 많이 했다. 지금은 일단 브레이크를 잡고 하는 투자라고 보면 된다. 그땐 투자 받으면 술 마시는 데 탕진한 사람도 많았다. 지금은 투자받을 때 금액도 적다. 모두 다 조심하면서 투자를 한다. 오히려 멘토링 등을 해주면서 함께 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허운나=아무래도 창업 CEO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서 조금 더 어려운 분야에도 도전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그렇지만 창업하는 사람들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 안정된 길보다는 위험한 곳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기업가정신 측면에서 스타트업 CEO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
▲진대제=1년에 대학 졸업자가 50만명이다. 모든 사람이 기업가정신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 중에 1만명 정도가 채 안 돼도 괜찮다. 대다수가 공무원해도 상관없다. 기업을 경영할 만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건 해야 한다. 대학에서 교수들이, 또 사회에서 말을 해줘야 한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는 벤처를 많이 만든다. 그런데 동부 지역에서는 교수로 배출되는 인재가 많다. 대학도 중요하고 창업도 중요하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고생을 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서울대, KAIST 학생들은 다들 유학을 생각한다. 그런데 지방대에서는 잘 안 간다. 유학 간 선배를 못 봤기 때문이다.
`EU체임버스` 행사에서 심사위원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 대회에는 300명 정도 참여했다. 팀마다 멘토를 붙여줬고 영어로 발표하고, 사업계획도 멘토들과 함께 짰다. 그랑프리 받은 아이디어가 네덜란드에서 벌써 광고까지 나오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쓰레기통에 태양광 집열판을 만들어서 쓰레기가 차면 태양광 전기를 이용해서 쓰레기를 압축해주는 내용이다. 쓰레기가 꽉 차면 쓰레기 수거차량에 연락해서 다 찬 쓰레기통만 수거해갈 수 있도록 해 업무 부담도 줄였다.
-허운나=마지막으로 멘토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대기업에 몸담은 입장에서 산업계에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진대제=지금까지 대기업에서는 좋은 기술을 가진 회사는 인수하지 않고 사람을 빼갔다. 핵심 인력 몇 명이 빠지면 중소기업은 그냥 쓰러진다. M&A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또 중소기업에서는 회사를 파는 걸 실패 했다거나 또는 책임감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회사를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사고 팔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최근에는 중견기업인 중에 자식들이 회사 안 맡으려고 해서 회사를 파는 사람들도 봤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회사에 투자한다.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기업에는 투자 안 한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찾아서 입사를 시켜주고 기업이 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뛰어난 박사급 연구원 한 명이 있으면 회사가 40%가량 바뀌기도 한다.
정리=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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