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커버스토리/문서유통 혁명이 일어난다

전자거래기본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곧 공포에 이어 8월부터 발효가 예상된다. 2010년 개정안 마련에 착수한 지 2년만이다. 개정안은 전자거래기본법 명칭을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으로 수정하면서 단순한 전자거래가 아닌 전자문서에 관한 법안임을 더욱 확실히 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전자문서 유통에 있다. 공인전자주소(#메일)로 불리는 제도를 통해 기업이 종이문서로 유통했던 모든 서류를 전자문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그동안 기업은 내부에서 전자적으로 문서를 생성하고도 이를 프린트해서 우편이나 방문 등의 형태로 유통했다. 하지만 법안 통과로 이런 체계를 온라인화해 페이퍼리스 환경 구현의 기반이 마련됐다.

개정 법안이 명시하고 있는 전자문서중계자를 활용하면 된다. `온라인을 통한 업무 완결`이라는 관점에서 기업과 최고정보책임자(CIO)에게 미칠 영향이 상당할 전망이다.

◇무엇이 달라지나=현재에도 모든 기업이 업무의 상당 부분을 전자문서 기반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중요 서류의 경우 유통 단계로 가면 다시 종이서류가 등장한다. `전자문서 생성→종이문서 출력→유통`이라는 체계 하에서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우편 발송이 필요했던 기업 공문서 등을 전자문서만으로 유통할 수 있다.

#메일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제조업이다. 공급망관리(SCM) 관점의 모든 전자문서 송수신 체계가 한 차원 진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원자재업체와 도소매, 본점 간 종이서류로 이뤄지던 주문과 계약, 거래명세서 및 내역서, 채권자료확인서 등이 모두 전자화될 수 있다.

물론 기존에도 전자문서를 송수신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문서의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해 안전성 및 보안성이 현격히 떨어졌다. 즉 `내가 이 문서를 받지 못했다`고 부인하는 경우, 중간에 위변조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송수신에 대한 이력관리도 힘들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송수신하던 유통 관련 모든 문서 송수신을 법적 보호를 받는 공인전자주소 체계로 전환함으로써 이런 이슈를 해결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계약과 변경, 해지 사실을 우체국 내용증명으로 발송했다. 하지만 본사가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하더라도 가맹점주들이 이를 부인하면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소송에 이기고 지는 것보다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또 가맹점 관리자들이 매일 우체국에 가서 계약 변경 내용을 내용증명으로 발송하는 것은 그만큼 업무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프랜차이즈뿐만 아니라 본사와 대리점 간 계약관계가 있는 모든 유통업체가 마찬가지다. 이제 과거의 `서면 전달`이라는 계약서의 내용을 모두 #메일로 대체할 수 있다.

◇의료, 금융, 공공 등 산업 전체 활용 가능=변화는 공공기관과 금융권, 의료 분야에서도 생긴다. 세금 고지서나 과태료 등 공공기관이 민간에 발송하는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모두 #메일로 발송할 수 있다. 4대 보험기관 중 몇몇 기관에서 검토를 시작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행정안전부도 민간과 공공기관 간 전자문서 유통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에 나섰다.

의료 기관에서는 의사와 약사 사이의 처방전, 병원과 보험사 사이에 근거 서류들을 #메일로 송수신함으로써 고객 편의성과 공신력을 높일 수 있다. 수술 시 보호자 서명이 필요한데 보호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도 전자서명과 #메일을 통해 본임임을 인증할 수 있다.

증권사의 계좌신청확인서, 주식거래내역서, 보험사의 각종 고지서 및 은행과 기업 간 대출 시 활용되는 증빙서류도 전자화시킬 수 있다. 보험업계엔 이미 #메일 기반으로 청약을 진행하는 `모바일 보험청약` 열풍이 불고 있다. 생보와 손보를 가리지 않고 10여개 보험사가 모바일 보험청약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가장 먼저 모바일 보험청약을 시작한 한화손해보험은 보험 청약 프로세스가 23단계에서 9단계로 대폭 축소됐다. 2주 가량 걸리던 보험체결 소요시간이 1일 이내로 줄어들었다.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재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고 영업활동과 업무효율성도 대폭 높였다.

전자문서유통은 전자문서중계자 지정을 받은 업체가 책임진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메일 주소 발급과 유통증명서 보관을 담당한다. 전자문서 자체는 기업 내부에 보관해도 되지만 더욱 안전하기 보관하려면 공인전자문서보관소(공전소)를 활용하면 된다.

#메일 송수신을 하려면 자체 유통서버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유통서버를 직접 설치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전자문서중계자의 시스템을 활용하거나 클라이언트 모듈을 구축하면 된다. 어떤 경우든 법적 효력을 얻으려면 전자문서중계자를 통해 문서를 유통해야 한다.

◇CIO가 문서 혁신전략 수립해야=전자문서유통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 대규모 IT 프로젝트가 필요하진 않다. 유통서버 구축은 길어야 한 달, 자체 전사자원관리(ERP) 등의 시스템 연계 작업도 3개월 안팎이면 마무리할 수 있다. 따라서 CIO의 역할은 시스템 구축을 진두지휘하는 것보다는 페이퍼리스와 온라인 업무를 위한 전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 있다. 프로세스 변경에 대비해 적절한 변화관리도 필요하다.

안대섭 NIPA 전자문서팀장은 “대규모 IT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업무를 완결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업 업무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돼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부 문서생성과 활용, 유통 체계에 대한 검토를 시작으로 #메일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내부 관행과 프로세스를 뜯어 고치는 것이 그 다음이다. 전자문서 보관·유통·활용 등 라이프사이클 전체에 대한 혁신 전략을 CIO가 수립해야 한다.

전자거래기본법은 전자화문서(스캔문서)의 원본 인정 등 아직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이슈를 안고 있다. 전자화문서는 처음부터 전자적으로 생성되는 전자문서와 달리 아직도 기업 업무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종이서류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다. 전자문서 환경으로 가는 과도기적 요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국회 통과로 전자문서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페이퍼리스 환경 구현을 위한 법적 기반의 절반이 마련됐다. 문서혁신을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 등 기업혁신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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