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폐막한 독일 하노버 산업 박람회는 산업자동화, 전기전력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올 한 해 먹을거리 방향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가 실증 수준을 넘어 상용화 단계로 진입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유수 기업들은 기존 단품 위주에서 전력 수요반응(DR)·에너지저장장치(ESS)·전기차 및 충전기 등을 통합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기반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기능을 내세운 하드웨어 제품이 아니라 기업 대 기업(B2B)이나 기업 대 소비자(B2C) 서비스를 잇는 솔루션으로 아직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제품들이다.
귀국 후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은 다시 제자리를 찾게 했다. 마치 그네를 타고 높이 올라갔을 때 멀리까지 보이던 세상이 그네가 내려왔을 땐 땅만 보이는 것과 같았다.
전력망 고도화 성격이 강한 외국의 스마트그리드와 달리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한국형 스마트그리드는 서비스 관점보다 하드웨어식 인프라 구축에만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 후 만난 기업들은 하나같이 원격검침인프라(AMI)·ESS·인홈디스플레이(IHD) 등 올해 정부 보급사업에만 관심을 보였다. 정작 보급받는 가정 등 사용자에겐 이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유와 체감할 서비스 혜택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보급 사업이 사용자에게서 외면받는 이유다.
IHD 보급사업은 구축 과정에서 일반가정은 물론이고 상가나 산업시설물에서도 거부당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일부 기업이 보급사업에서 하차하는 일도 생겨날 정도다.
IHD는 단순히 전기 사용을 줄이는 디스플레이 장치가 아니라 소비 사용 패턴을 보여주며 소비자 의식을 전환해 결국 국가 전력망 수급 안정화에 기여하는 서비스 플랫폼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비스적 접근 없이 구축 자체로만 사업 완성도를 판단한다.
한국형 스마트그리드는 인프라 구축과 병행해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알리고 공유하는 개념 접근이 필요할 때다.
박태준 그린데일리 gaius@etnews.com